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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화자 시점 영어회화
조정화 지음 / 사람in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벌써 느껴지듯, 이 책은 영어의 수많은 관용 표현을 놓고 우리 말로 바꾸어 이해하자던 방식으로부터의 탈피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어 표현, 우리 말로 뭐라고 하나?’에서 ‘이런 우리 말을 영어로 뭐라고 할까?’로 시점이 바뀌었다. 물론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와 변화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철저히 화자(speaker) 중심의 회화책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딱히 영어로 뭐라 표현할 ‘빵뻡’이 없는 표현들 36가지를 추려 뽑았다. 구어체이면서도 저속하지 않고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표현들이다. 거짓말 좀 보태서 표현하자면 매번 미국 무기만 수입하다가 이제는 당당히 국산 기술로 개발한 무기를 수출하는 쾌거라고나 할까? 가히 우리 국력으로 미국으로부터 전시 작전권을 회수하는 자부심에 견줄 수 있다 하겠다. 아무튼, 허풍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우리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워 둔 영어 회화가 우리 일상 속에 녹아들어 실제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기 좋은 드라마 또는 영화라도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수많은 표현을 건져 먹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써먹는 똘똘한 표현 하나가 더 값어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애써 배우는 회화에도 거품은 많았다. 그러니 실제 써먹거나 들어보지도 못할 애먼 표현들은 이제 작별을 고하자.

우리는 종종 일상용어 가운데 비속어나 은어는 아니지만, 누구나 이해하고 사용하며 입에 붙은 표현으로 지금의 상황을 더는 절묘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음을 발견한다.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차이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문화 차이로 보는 게 맞다. 한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들은 사실 한국의 문화 코드를 잘 이해하고 적응한 사람들이다.

책의 구성을 보자. 각 유닛의 첫 장은 마치 자막 달린 외국 영화 한 편을 먼저 훑어보는(scanning) 느낌이다. 일기를 쓰듯, 옆의 친구에게 수다를 떨 듯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유닛의 상단에는 요즘 회화책의 추세이자 강력한 연습 도구인 QR 코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설명이 필요한 단어나 동사구 등은 본문 하단에 빨간 색상으로 배치하여 가독성을 높였다. 여기에 사용 빈도가 높은 예문을 두 깨씩 덤으로 얹었다. 독자의 장기간 연습이 용이하도록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가 사용되었고, 특히 영문 폰트는 내용별로 깔끔하고 단정하여 눈이 편안하다.

‘연습 1’에서는 첫 장에 제시된 문장을 짧은 의미 단위의 섬으로 나누어 기억해서 말하게 하였고, ‘연습 2’에서는 주어진 단어와 틀을 새로운 내용으로 응용할 수 있게 하였다. ‘연습 3’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말하는 섀도잉 훈련으로, 한 문장씩 따라 말하기-오디오 속도에 맞춰 동시 말하기-지문 안보고 오디오 듣고 말하기로 구성되었다. ‘연습’을 마치면 유닛의 주제를 보다 확장한 형태의 말할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저자는 본문에 제시된 각 표현 어구를 색인으로 만들어 한글 표현에 해당하는 영어도 함께 실었다. 이쯤 되면 결정타 보너스라 하겠다. 한국인 영어 화자들을 위한 저자의 애틋함을 엿볼 수 있다. 회화 제시문을 알차게 연습하고 자산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독자 제위의 열공을 감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