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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 초보 라이터를 위한 안내서
고홍렬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단 한 번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 없지만, 유명 작가인 저자가 초보 글쟁이 당신에게 글쓰기를 배우지 말라고 조언한다면? 답변하기 전에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모차르트의 교육 방식이 떠올랐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러 온 어린 학생이 누군가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면 바로 돌려보냈다는 일화 말입니다. 피아노 교습의 넘치는 자신감의 표시인 동시에, 어설프게 배워 안 좋은 습관이 든다면 고치기가 매우 어려움을 간파한 지혜일 겁니다. 그렇다고 읽던 책을 던져버리라는 소리는 아닙니다만.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게 어떻게 하면 잘 걷는지 강의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이론보다는 일단 시작하고 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 그럼, 글은 쓰고 싶지만 날초보인데 어떻게 시작하느냐? 이 책은 그야말로 글쓰기 세계의 입문자들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여정에 나선 호빗들에게 길을 안내하며 위험에서 구해주는 마법사 간달프 같다고 할까요?

이 책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면 열심히 오래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1부,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2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글쓰기 연습법을 구체적으로 다룬 3부,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담은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최근 글쓰기가 하나의 유행처럼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면서 출판사를 비롯한 책 쓰기 아카데미 등이 기획출간을 맡아 진행해준다는 광고문구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꼭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쓰기 솜씨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책 한 권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있을 터이고 필자 역시 솔직함을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글쓰기에 투여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명 작가들을 보면 남보다 글을 잘 써서 작가가 되었다기보다는 꾸준히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더라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글쓰기의 장점은 생각 외로 많습니다. 관찰력과 생각하는 힘 같은 지적능력이 높아지고, 책 읽기의 완성도가 높아지며,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으며, 삶의 밀도를 높여주고, 퍼스널 브랜딩을 가능하게 하며, 심지어 글을 잘 쓰면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단연 마음을 끄는 장점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별도의 밑천이나 기술 없이도 꾸준함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독서 후 서평 쓰기가 삶의 일부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바인더로 묶어 개인 전집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는 하지만, 10년 후 다가올 정년 이후의 삶을 미리 계획하는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한다면 이것만 한 즐거움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정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 책을 쓰거나 원고 기고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글쓰기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69쪽)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 (98쪽)
글쓰기 실력은 단번에 좋아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먼 길을 가는 여정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라는 생각 따위는 잊어버리고 다만 오늘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으면 된다. (111쪽)
저자가 추천하는, 샌프란시스코 작가 집단 ‘그로토’의 예술가 35명이 함께 만든 『글쓰기 좋은 질문 642』를 잘 활용하면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과 부담 없이 습작의 길을 들일 수 있겠습니다.

소제목 단원마다 각 도입부에 글쓰기 관련 참고문헌의 발췌문 또는 유명인사의 어록이 실려있어 강렬한 인상과 함께 어서 빨리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재촉의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책 끝에 실린 참고문헌만 찾아 읽어도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나 눈높이가 달라지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표지에 적힌 부제처럼 초보 글쟁이들을 위한 안내서로 이만큼 참한 책도 없어 보입니다. 글쓰기 본능에 충실해지고 싶은 독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