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법정 소송에서 피고인이 공룡이라면, 십중팔구 언론에서는 난리를 피울 것이다. 2013년 미국 정부 대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두개골로 알려진 사건에서 언론은 저마다 밀수된 공룡 뼈를 다루려 앞을 다투었다.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Tarbosaurus baatar)는 공룡의 시대가 끝날 무렵 백악기 말기에 몽골의 습한 범람원을 누비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고생물학자 팀에 의해 발굴된 타르보사우루스 두개골 일부는 운 좋게도 박물관으로 옮겨져 연구와 공개 전시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중앙아시아에서 불법으로 수출되어 공공연한 화석 암거래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일부는 이베이에서 열리는 보석 광물 전시회에서 개인 딜러를 통해 직거래 되거나 경매를 통해 판매된다.


 

뉴요커기고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페이지 윌리엄스는 문제의 타르보사우루스를 구입, 준비, 판매를 시도한 에릭 프로코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유골이 어떻게 몽골에서 빠져나왔으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몽골로 되돌아갔는지를 밝힌다. 한편 고생물학,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충돌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복잡한 양상을 상세하면서도 도드라지게 그려내면서, 자연물인 화석이 어떻게 국가적 문화유산 또는 탐욕스러운 수집 대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 공룡 화석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작가의 논픽션 데뷔작 '공룡 사냥꾼'은 화석을 사냥하거나 수집하는 사람들 모두 흥미를 느낄만한 폭발물 상자나 다름없다. 철저한 조사와 풍부한 주석을 갖춘 이 매혹적인 책에서 화석 애호가들은 지금까지의 자연사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유난히 한 가지 영역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마크 노렐의 말처럼 구석구석 온통 화석으로 뒤덮여 있는 집에 가보니 식기세척기에도 삼엽충이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관심과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화석을 사냥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인가. 대개 공룡 화석은 2억 년 이상 된 것인데, 너무 희귀하고 찾기 어려워서일까. 희귀성으로 말하자면 지구 행성에 존재했던 모든 동물 종의 1% 미만의 유해가 화석화되었다고 추정된다. 인간이 기록한 역사보다 먼저 존재했던 생명체들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과학자들이 발견하였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확인된 모든 새로운 종은 자연사 지식을 종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니면 화석이 매우 수익성 높은 사업이기 때문일까? 1997라는 별명을 가진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화석은 무려 836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저자가 지적하듯 화석 광()들은 일반적으로 고생물학자, 수집가, 상업적 사냥꾼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의 개인적 성향은 셋 가운데 어느 집단을 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에게 팔려나간 화석은 사실상 과학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박탈감을 선사한다. 박물관 같은 공공 기관에 맡겨진 표본들은 고생물학자들이 두고두고 반복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연사 사료가 되지만, 개인이 소장하는 화석에는 영구히 관리해야 하는 공공재와 동등한 의무를 지울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몽골 등 많은 나라에서는 허가 없이 과학적으로 중요한 화석을 발굴하거나 수출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38세의 에릭 프로코피는 지구 저편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불운한 주인공 같다. 독자의 눈에 비친 그는 재정적 위기에 처한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화석 사냥꾼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경제 개념이 적고 검소함을 모르던 주인공 부부는 늘 위태롭던 재정 상황을 겨우 수습하며 살던 중 유명 경매장에서 사냥꾼 인생 최고의 화석을 처분하여 수백만 달러의 이득이 예상되자 마치 화석을 가득 실은 선사시대 보물선의 선주라도 되는 듯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화석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세 집단의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으며, 충돌의 결과로 감옥에 갇힌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는 지정학,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열정을 구실로 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되었고 그의 독특한 개인적 이력과 고지식한 인간성은 비극적 영웅에 어울리는 소재가 되었다.

 

프로코피는 1990년대 소년 시절 고향 플로리다의 강에서 상어 이빨 따위의 원시 시대 기념품을 줍기 위해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는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카탈로그 제작자로 일하다가 고가의 화석 경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2006년 몽골에서 발굴된 공룡 두개골의 일부를 사들인 후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되팔았다. 그러나 이후 발굴작업과 더 많은 화석 수입을 목표로 몽골에 도착하였을 때 자신이 밀수 혐의를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국가는 화석 수집과 밀거래를 규제하는 법률이 전혀 없고 있더라도 매우 느슨했다. 화석연료나 귀금속 보석류에 비하면 공룡의 유골은 이렇다 할 돈벌이는 되지 못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심지어 미국의 관련 법률조차도 완전하지 못하여 사유재산권을 우선하여 인정하고 마는 데 그쳤으므로, 프로코피는 상당히 합리적으로 법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주장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모르고 한 일이니 선처의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반론에 힘을 얻었고, 실제 미국 법정에서도 사상 초유의 재판이라 선례가 없었으므로 그는 가혹한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고생물학과 화석 사냥에 관한 역사적 맥락을 좀 더 조명하기 위해 프로코피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이 작품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라기보다는 공룡 밀수 사건을 추적한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저자는 특히 화석 사업에 뛰어든 주요 참가자들의 신상을 작성했는데, 많은 등장인물의 배경 설명으로 시작하는 모든 일화의 결말은 공룡 밀수 사건의 재판 으로 수렴된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풍부한 고증에 비해 그 흔한 공룡 표본의 사진이나 신문 기사, 도표나 그림 같은 시각 보조 자료가 전혀 없는 점은 옥에 티다.

 

20세기 중반 고생물학적 발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화석 산업은 큰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화석 산업과 관련한 중국, 몽골, 러시아, 미국 등의 정부 당국과 기관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치인들의 관심 사항, 동향, 참여 동기 등이 드러난다. 전대미문의 공룡 밀수 사건, 그칠 줄 모르는 자본의 탐욕, 이익을 위해 번복되는 믿음 등을 다룬 세부적인 묘사는 강렬한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는 인류가 존재하기도 수백만 년 전에 죽은 유골을 개인 또는 정부 기관이 합법이라는 명목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밀반입된 타르보사우루스는 결국 몽골로 반환된다. 줄거리의 핵심은 프로코피라는 인물의 일대기이지만, 몽골 고생물학자 볼로르 민진이 타르보사우루스를 자국으로 데려와 고생물학 연구와 교육을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는 우리에게 신선한 영감을 준다. 그녀는 타르보사우루스의 판매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그녀가 설립한 비영리 몽골 공룡 연구소와 함께 밀반출된 수많은 공룡 유골이 송환되도록 힘을 보탰다. 매년 여름, 그녀는 40피트 높이의 이동 박물관에서 몽골의 시골을 여행하는 팀을 이끌고 공룡들을 그녀의 동료 몽골인들에게 직접 데려가 보여준다. 그러나 밀수입된 공룡 판매에 들어간 액수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지원금으로 기초교육과 연구를 진행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몽골의 화석이 공룡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화석 대부분이 몽골이 아닌 외국의 고생물학자 팀과 상업적 화석 사냥꾼에 의해 발굴된 점은 매우 안타깝다. 이렇게 밀반입된 타르보사우루스의 이야기는 외국의 고생물학자들에게 몇 가지 불편한 의문을 제기한다. 외견상 상업적 이득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그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빙자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열강 식민주의의 발현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또한, 화석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몽골 학계의 연구능력과 공공 활동을 위한 역량을 키우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경제 기반도 부실한 중앙아시아의 일개 국가를 위해 과연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룡은 과학으로 가는 관문이고, 과학은 기술로, 기술은 미래로 가는 관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