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전쟁 - 많은 일을 하고도 여유로운 사람들의 비밀
로라 밴더캠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학생 시절에는 시간을 관리하는 ‘플래너’를, 직장인이라면 ‘다이어리’ 정도는 사용해 본 경험들 있으시리라. 학습 계획을 적든, 거래처와의 업무 내용을 적든 이렇게 하는 데에는 시간을 적절히 잘 관리하고픈 공동의 욕구가 깔려 있을 것이다.

서울에 살던 필자는 고교생 때 버스로 30분 거리를 통학했다. 수학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영어 과목은 좋아해서 늘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영어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 일 보는 시간조차도 단어를 외우곤 했다. 자칫 버려지기 쉬운 자투리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모두 합쳐보니 하루 두 시간 정도를 버는 셈이었다. 남들처럼 따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내어 적고 외울 필요가 없었다. 남들 보기에 별로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은데 시험을 보면 늘 반에서 상위권을 다투었다. 그 습관이 결국은 오늘날의 밥벌이로까지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한다. 적극적인 선택과 집중으로 시간을 사용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여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효율성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수학은 버리는 대신 영어를 택하여 집중한 결과가 그것이다. 학력고사 세대였으니까 망정이지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이 책의 원제 Off the Clock의 사전적 의미는 근무 중이지 않거나 느긋한 시간을 뜻하며, 말 그대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활을 위한 지침이자 안내서이다. 네 아이의 엄마인 저자의 일화들을 곁들여 900명의 시간 관리를 추적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실천적 방안을 고민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시간 관리 저서를 낸 점이나 천만 명이 보았다는 저자의 TED 강연 영상에 언급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미국 현지에서 시간 관리에 관한 강연과 집필의 수요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시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역설로도 읽힌다. 어쨌든 저자는 의식적인 선택과 노력으로 실행한 일에 걸리는 시간과 그냥 소소하게 무의미한 행위로 흘려보내는 시간의 인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시간 인식의 높고 낮음을 인지하는 것이 시간 관리와 행복으로의 출발점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이 애써 쟁취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라는 것을 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곧 삶을 어떻게 사느냐와 귀결된다.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낸다는 의미가 된다. (p.169)

대개 우리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어떻게 하면 업무의 압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일을 완수하려면 세상 급한 일 없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가장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활용했던 반 직관적인 7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정신없이 바쁠 때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줄 시간 인식의 전환을 역설한다. 다음과 같이 이를 잘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 급식 지도에 시간을 덜 할애하고 교사들의 업무시간을 확보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 여러 대륙을 오가며 다수의 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회의 없는 여유시간을 즐기는 경영자

- 이른 아침 와플 가게에서 업무에 집중한 후 종일 느긋하게 열린 마음으로 직원을 대하는 최고 경영자

- 이것저것 손대어 정신없다가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함으로써 창의력 정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산성의 정점에 다다른 예술가


저자는 지금까지 통제 밖이었던 인생의 시간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작성함으로써 직장생활, 대인관계 및 개인의 행복감을 한 차원 높여줄 전략을 제시하는 한편, 가령 1주일 단위의 한정된 시간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면 업무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한 사람들의 사례와 같이 누구나 생산적이면서도 즐거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 뒷부분에 실린 실천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내 시간을 추적한다 – 30분 단위의 범주별로 시간일지를 기록함.

2. 나에게 최적화된 시간을 디자인한다 – 이상적인 하루의 현실을 그려 봄.

3. 기억할 만한 일들로 시간을 채운다 – 기억을 환기하는 시간을 만듦.

4. 빈 시간을 채우지 않는다 – 뭔가를 하지 않는 시간을 즐김.

5. 서두르지 않는다 – 일상 속의 작은 휴가 시간을 가짐.

6. 행복을 위해 투자한다 –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하루의 시작으로 설정.

7. 조금씩 꾸준히 한다 – 하루 10분 운동, 200자 글쓰기.

8. 사람과 보내는 좋은 시간의 가치를 안다 – 인간관계에 투자.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서구인들의 시간 개념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의 윤회설과 같이 동양인들이 나선형의 반복적인 시간관을 지녔다면, 서양의 시간관은 서구 문명에 깊은 흔적을 남긴 기독교의 직선적 시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힘을 유일하며 또한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통해 시간을 과거와 미래 사이에 뻗쳐있는 직선적인 경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문법의 ‘시제’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직선적 시간관을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같은 직선적 시간관은 18세기 서구의 진보적 역사의식과 결합하면서 더욱 구체화 된다. 철학자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양은 '피안과 영원의 모래 속에 코를 박고' 있기를 거부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지상 왕국 건설에 매달렸던 것으로, 특히 자연과학의 발전은 서양의 근대적 시간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으며 뉴턴은 그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수학적 시간관은 결국 시간을 공간화했으며, 시계의 발명은 그 물리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서양의 이 같은 시간관은 오늘날 타율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주일 168시간을 어떻게 잘 쪼개어 쓸 것인가를 묻는 동영상을 보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시간 운영방식에 공감하면서도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를 묻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비록 동서양의 시간관이 출발점부터 다르기는 해도 우리 독자들께서는 시간 관리 방법을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어울리는 방식으로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시리라 믿는다.




마음챙김은 시간을 준다.
시간은 선택을 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선택은 자유로 이어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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