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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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독일어로 쓰인 이 책의 부제 (Vom Sog der Massen und der neuen Macht det Einzelnen)를 영어로 자동 번역해보니 ‘집단과 개인의 새로운 권력에 관하여’ (About the new power of groups and individuals) 로 읽힌다. 표현만 놓고 보자면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라는 한국어 부제가 좀 더 결과 예시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대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대량 생산ㆍ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사람으로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다분히 경제적 시각이 우선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대중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두 저자가 같이 책을 썼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군터 게바우어 교수가 1장에서 4장까지 대중의 정의와 대중에 속한 개인의 의미를 찾아보고, 역시 같은 대학의 1975년생 젊은 교수 스벤 뤼커는 5장부터 9장까지 대중과 연결되는 매개체, 이를테면 공간, 대도시 대중, 가상세계, 문학 작품 속의 비평 마지막으로 대중의 구조에 관하여 고찰하고 있다.



저자가 종종 비견되는 예시를 들고 있는 인물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는 1981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작가이자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인으로서 빈과 런던, 취리히에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현대 사회에서의 '군중의 광기'라는 주제에 대하여 깊고 넓게 사색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저서를 접해본 적은 없으나 군터 교수가 마치 의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말하는 대중은 과연 무엇인가? 대중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순전히 수량으로 규정해서 대중의 특수성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중을 형성하기 위해 특별히 많은 사람이 모일 필요조차 없다. 대중은 실제의 사안, 의도, 정서, 평가를 결합시키는 데서 생겨난다. (p.45)

과거 중세시대에는 대개 성문 아래에 넓은 공간이 있었고 모이기 수월한 장소였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요즘은 각종 포털이나 게시판이 광장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사람이 직접 말을 타고 가서 전달해야 했던 메신저의 역할도 수행한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고 각종 동영상과 매체 덕분에 현장감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로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지경이다.


저자는 대중의 형성을 단계별로 보면 첫째,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장소에 모이고 둘째, 이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셋째, 몸을 움직이고 구호를 외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공유하며 넷째, 행동이 생각과 결합되는 순간에 대중은 잠재력을 얻어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대중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애초 대중이라는 명칭이 사회적으로 보편화 되기 시작한 일례로 프랑스의 1968년 5월 항쟁과 1989년 독일의 통일을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이 학사문제와 통일 요구라는 의견의 공통분모를 지녔으며 정부가 손을 쓸 수 없을 지경까지 집단행동으로 요구사항을 관철시켜 처음으로 집단의 위력과 성취감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신판 한국의 대중에 관한 언급을 발견하여 반갑기도 하였다. 대중운동을 통해 정권을 무혈로 전복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2016년 시작되어 결국 국민의 손으로 정부를 교체시킨 촛불시위를 지켜보며 ‘여기서는 시위를 벌여도 되는 자유가 스스로 자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새로 성취한 민주적인 한국 시위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배어 있었다’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과 대중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한 것으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보다 값진 대중적 경험은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두 저자는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었지만, 현대에 와서도 실체가 없어 보일 뿐 대중의 지위는 여전히 공고해졌으며 그 개념이 사라진 것도 아니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던 인터넷 덕분에 유례없이 개인화 파편화된 환경에 놓여있지만 오히려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의사의 쏠림 현상으로 더없이 강력한 권력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학 분야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자처해왔으나 워낙 배경 지식이 빈곤한 데다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학자의 이름이 눈에 띌 때를 제외하고는 수없이 등장하는 사회이론가들과 그들의 학문적 이해가 거의 없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아마도 대중이라는 주제를 따로 놓고 생각해 볼 기회가 아직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저서의 공간적 배경인 독일을 비롯한 동유럽 지역의 사회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점 등에 원인이 있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사회학 #새로운대중의탄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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