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삶이 될 때 - 아무도 모르는 병에 걸린 스물다섯 젊은 의사의 생존 실화
데이비드 파젠바움 지음, 박종성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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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이어갈 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돈? 노력? 믿음? 목표의식? 책 제목처럼 희망이 답일까? 모두 다 필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겠고 한국어로 붙인 제목과 같이 ‘희망’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병에 걸려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저자의 치열한 삶을 보건대 나는 ‘용기’라 말하고 싶다.

어느 날 저자는 아무도 모르는 희귀병에 걸린 자신을 발견한다. 이름하여 캐슬만병. 초기 증세는 극심한 피로감과 림프절 비대증 및 팔과 가슴의 혈액기태, 고열과 복통 그리고 온몸을 흥건하게 적시는 식은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근육량 대량 감소,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심한 구토, 칼로 찌르는듯한 복통, 모든 장기의 부전, 림프절 부종으로 배에 물이 차올라 임산부보다 더 커지는 증상(복수)과 의식의 명멸 등. 캐슬만병은 림프종과 암의 경계 선상에 있고 임상 자료가 많지 않아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으로, 마치 방치된 고아 같다고 하여 고아 질병으로 불리운다.

1954년 메사추세츠 출신의 한 병리학자가 비스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 10명의 림프절에서 비정상적인 패턴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은 벤저민 캐슬만이었다. 이 병리 현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중략) 이 질병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는 iMCD (idiopathic Multicentric Castleman Disease 특발성다중심캐슬만병)라는 이름에 첫 번째 단서가 들어있다. ‘특발성’은 대체로 원인 불명을 의미한다. (130쪽)

발병을 전후하여 책 내용은 원제처럼 ‘치료제를 쫓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가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헐크 같은 체격과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다져진 체력을 지녔기에 망정이지, 보통사람 같았으면 다섯 차례나 재발하도록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희귀병 극복의 투지는 그의 네 번째 재발 이후 불타오른다.

4차 재발 때까지는 발병 때마다 사경을 헤매며 증상 자체가 두려운 환자의 입장이었으나, 5차 재발 때에는 수년간 쌓아 둔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스스로 병을 극복해보려는 전투적인 자세로 돌변한다. 피동적인 환자에서 질병을 극복해보겠다는 의사 특유의 오기에 장애인 판정까지 받았던 과잉주의력이 치료제 추적에 추진력을 더했다. 상자 밖 사고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FDA 승인을 받지는 않았으나 시중에 유통되는 약품을 찾아 직접 자신에게 투여해보는 모험 끝에 결국 희귀병을 극복하게 된다.

이 모습은 마치 범인을 쫓는 형사의 치밀한 수사 과정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치료제였던 약품이 모든 캐슬만병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캐슬만병 환자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적극적인 치료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그를 돕는 수많은 지인과 친구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얻는다. 의사로서의 전문지식과 경험도 큰 몫을 해낸다. 극히 드물게도 해당 질병으로 아파본 적 있는 의사야말로 진정 환자들을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치료할지 알아가는 과정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저자가 의사인 동시에 환자였으므로 전문적인 의학용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친절하게도 독자를 위해 자세히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는데, 특히 체내의 면역 체계를 군대에, 환자를 사령관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쉬운 이해를 돕고 있다. 캐슬만병을 초 간단 압축 표현하자면 아군을 향한 총질인데 제압이 아닌 완전한 섬멸전 수준이고 도저히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족) 군대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곁길로 빠져보자. 아버지가 대통령인 친구를 잘 둔 덕분에 덩달아 출세하여 별 네 개까지 달았으며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노예처럼 사사로이 부려먹어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갑질하다 잘려도 시대착오적 발언을 해대는 인간이 우리나라 육군 대장이었다고 한다. 내부의 적은 아군 총질이 아니라 원자폭탄 투하를 해서라도 섬멸해주기를 격하게 응원한다. 아~ 속 시원해~!! (사족 끝)

끝으로 책자 구성에 한 마디. 여러 등장인물들의 사진을 비롯하여 내용이해를 돕는 그림, 도표, 그래프, 지도 등의 시각자료가 전혀 없어 매우 아쉽다. 그렇게 했더라면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압도적으로 다수일 것이 분명한 일반 독자들을 위한 훌륭한 배려일 것이다. 흑백 1도 인쇄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건장한 20대 초반의 주인공이 질병으로 인해 어떤 모습으로 변했었는지 다만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는 부분은 못내 아쉽다.


‘이번엔 제발 깨어나라‘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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