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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예쁜데 자꾸 눈물이 나요 - 임신, 출산으로 찾아온 산후 우울증으로 힘든 당신에게
양정은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4년 8월
평점 :
수습 기간 없이 담당자가 된 기분. 딱 그렇다.
엄마라고 내게 첫 아이를 품에 안겨주었을 때 쪼글쪼글한 빨간 생명체가 울어대며 숨을 쉬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출산과 육아는 크나큰 기쁨과 환영의 과정이지만, 애도가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 가슴의 유선이 발달하듯 감정의 유선이 뻗어나가던 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0p
👶 아이는 고용주인가 봅니다. 월급도 안 주면서 24시간 부려먹고, 복지라고는 가뭄의 단비처럼 보여주는 웃음이 다입니다.
👶 돌이켜보면 어릴 때도 '내가 슬프다'라는 인식보다 '내가 슬퍼하는 걸 엄마가 알면 얼마나 슬플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닌, 나와 부모님이라는 덩어리 상태.
글쓴 이가 말하는 K장녀 콤플렉스가 나한테도 있었던 것 같다. 나마저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중학교 다녔을 때 이상한 선생을 만나 뺨 한대 제대로 맞았던 기억은 아직까지 마음의 상흔으로 남아 있다. 엄마는 모르는 사실. 당시 엄마가 모르게 하려고 동네를 몇 바퀴나 돌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웃는 연습을 하고 집어 들어갔는지. 생생히 기억나는 기억 속 장면이다.
🩹 산후 우울은 호르몬 변화에, 당위적 자기, 이상적 자기, 실제 자기의 싸움에, 그림자의 일에, 원가족과의 관계와 부부간의 관계에 동반하는 성장통까지를 강하게 겪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33p
책에서 길에 늘여서 표현한 쓰나미같은 산후우울증에 깊이 공감한다. 신랑과 말다툼하며 또 다른 외로움에 빠지는 그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당시 양정은 작가님을 만났으면 말없이 꼭 안아주었을텐데... 먼저 산후 우울증을 진하게 겪은 난 아이를 낳고 봄이 오기까지 기다리던 그 6개월이 꼭 6년같이 느껴졌었다. 10월생이라 곧 겨울, 몸조리도 할겸 집안에만 있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남몰래 아이 재워놓고 많이 울었다. 그토록 사람이 그리웠던 때가 있었을까.
너무 답답해 바깥바람 쐬고 싶어서 간 곳은 시내를 통하는 육교 건너 빵집. 🍞 🥯 🥐 🥖
당시 나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리추얼은 <응답하라1988>을 시청하며 옛생각에 푹 빠지는 거였다. 이후 6년같은 시간이 흐르고 봄이 되자마자 주 1~2회를 빼곤 매일 차를 타고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아기엄마들을 주로 만나긴 했지만 나와 아기가 환영받는 곳이면 어디든 갔던 것 같다.
책에서 나오는 성인과 이야기 하고싶은 간절한 마음, 아이 낮잠 잘 때 살살 라면물 올리면 아이가 깨서 라면 한번 편히 먹지 못하는 현실에 화가 났던 마음 등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책에서 아기띠 메고 화장실 이용하는 게 나오는데 불편하긴 하지만 일상이니까. 서울 다녀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아기가 자지러지게 계속 울어서 아기띠 메고 운전한 적도 있다. 감각이 예민하고 기질이 까다로운 아이라 엄마품에서 안정을 찾았다.
첫아이때 산후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둘째를 갖는 게 걱정될 정도였던 내가 두 아이를 낳고 비교적 안정되게 살고 있는 건 첫아이 낳고 충분히 애도의 과정을 거쳐서일까?
🤰아득함 속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소중해 보입니다. 176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나란 사람은 없다는 듯이 덮어놓거나, 이제 더는 과거란 없다고 단념하기보다 나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때 행복했는지, 당연하게 주어진 줄 알았으나 아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하나씩 보고 알아주고 보내 주는 것이 애도일 것입니다. 229p
주변에 임신한 지인이 있다면 선물하고픈 책이다. 곧 다가올 엄마라는 세상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인으로 살려면 이 책이 단연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