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p.194)
*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중략)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중략)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p.210)
*
인어소년, 이랄까. 매정하고도 무능한 아비가 동반자살을 하고자 했던 아이. 살려는 본능이었는지 아가미가 솟아 살아난 아이. 그 아이를 주워온 강하의 할아버지, 그리고 “곤”이라 이름을 붙여준 강하.
<한 스푼의 시간> 속 소년처럼, 로봇은 아니지만 인간사에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소년이 등장해 반갑고도 애정이 갔다. 달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으며 징그럽거나 무섭거나 최소한 낯설다는 말 대신,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뻤던 소년. 그리고 존재를 최초로 존중받게 된 한마디.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새 옷을 입고 글도 새로이 고친 이 아름다운 소설을 같이 많이 나누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p.194)
*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중략)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중략)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p.210)
*
인어소년, 이랄까. 매정하고도 무능한 아비가 동반자살을 하고자 했던 아이. 살려는 본능이었는지 아가미가 솟아 살아난 아이. 그 아이를 주워온 강하의 할아버지, 그리고 “곤”이라 이름을 붙여준 강하.
<한 스푼의 시간> 속 소년처럼, 로봇은 아니지만 인간사에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소년이 등장해 반갑고도 애정이 갔다. 달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으며 징그럽거나 무섭거나 최소한 낯설다는 말 대신,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뻤던 소년. 그리고 존재를 최초로 존중받게 된 한마디.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새 옷을 입고 글도 새로이 고친 이 아름다운 소설을 같이 많이 나누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최대한의 궤적을 그리며 잔손금과도 같이 펼쳐진 길을 돌아가리라, 몸이 허락하는 한. 그녀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간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지상의 찬란한 어둠을 향해 나아간다. (p.19)
-
책을 펼치고 나서 조각이 첫 임무 수행을 마치고 지하철 출구를 향해 가는 부분이다. 이때부터 짜릿하고 멋진 소설이 시작된 것이다. 귓가에는 누아르 영화 비지엠이 들리는 듯했다.

-
“상처가...... 벌어집니다.”
심호흡하고 나서 떼는 첫마디가 그거였다. 작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의사가 말하자 은은한 스킨 로션에 소독약이 뒤섞인 듯한 냄새가 끼쳐왔는데 그녀는 어쩐지 그 냄새에 속이 뒤집히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당장 수상한 사람에게 경독맥이 베일 위기에서 이런 다정하며 헌신적인 말투라니. (p.84-85)
-
그가 물 한 잔을 완전히 비우는 동안 조각은 시선을 줄곧 발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이런 때에 더욱 선명해지는 죄악감이란 이를테면 물을 삼키는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 같은 사소한 것에조차 심장이 술렁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어디에도 파종할 수 없이 차가운 자갈 위에서 말라비틀어져야 마땅할 터였다. (p.240)
-
구병모 작가님은 사랑에 빠진 이가 그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마음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감탄에 감탄. 그래서 아이돌팬들이 구절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스타에게 바치는지도.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겠다.
조각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숨을 거두게 만드는 킬러로 평생을 살게 되었고, 그 운명은 ‘지켜야 할 것을 만들지 말자’는 맹세로 이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빛을 찾아 몸을 비트는 그늘진 구석에 심긴 식물처럼, 생에는 자꾸만 미안한 의미들이 깃들어버린다.

-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어떤 심장의 소용돌이들. 류가 떠난 뒤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 그리고 그것은 손안에서 차게 식은 무용의 윤기 없는 털의 감촉으로까지 이어진다. (p.313)
-
<한 스푼의 시간><아가미><파과>까지 연이어 읽게 되면서, 무감각한 감정, 인간성이 상실된 어떤 존재가 생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공통적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끝내 극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
덧) <파과>에서 <한 스푼의 시간>이 나오는 힌트를 나름 추적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오래 두고 쓴 냉장고에 조각의 노쇠를 빗대는 장면(부품. 단종. 고장. 교체)과 한바탕 휩쓸고 난 후 공원 풍경을 그릴 때 “한 티스푼의 설탕에 지나지 않았던 일화들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다 결국 눅눅해지며 감당 못하도록 찐득해진다(p.329)”는 구절을 읽었을 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투자의 법칙 - 돈의 흐름이 보이는 첫 번째 투자 수업
영주 닐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전까지 재테크엔 관심이 없었다. 주식이나 아파트 매매 같은 건 남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냥 월급만 아껴 쓰고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언젠가 돈이 모이고, 집도 사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요즘(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비용이 만만치 않다)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지, 만에 하나 돈을 벌 수 없을 상황이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앞이 까마득하다.
그래서 요즘 재테크와 경제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그중엔 좋은 책도 있었고 돈이 아까운 책도 있었다.
워낙 배경지식이 부족해 두세 번을 읽어야 겨우 이해되는 상황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행운에 가깝다. 이제까지 파편적으로 알던 내용들을 아주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었다.
책 제목에서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려준다고 하지만
실제론 내가 이제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지식들을 알려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있는 삶으로 가기 위한 첫 공부를 이 책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빨간책방> 팟캐스트 속 흑임자 김중혁 작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한다. 그런 그의 소설 리뷰는 늘 새롭고 반가운데, 이번 책에는 글쓰기를 중점적으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를 이야기한다. 특히 뒷부분의 문제풀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 <대화 완전정복>은 나도 모르게 정답을 맞추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버린다. ㅋㅋㅋㅋ (정답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작가님의 말도 소용없고)

 

 (언어영억부터 과학영역까지 있다!)

 

글쓰기 책이란 무엇인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원고지 몇 매 기준 기승전결 각 매수는 이러하다 정해주는 게 글쓰기 책일까? 어쩌면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쓰게 만드는 게 글쓰기 책의 진정한 미덕 아닐까?

한 글자씩 메우는 글쓰기보다 무엇을 쓸지 오래 고민해온 김중혁 작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귀하다. 생각은 어디서부터 날아오지? 나만의 스타일은 어떻게 정해졌지? 누군가는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짚어보고 관찰해온 작가가 매번 실패하지만 그래도 좋았고, 이번에 쓰지 못한 것을 다음에 쓰려고 노력해온 17년간 창작노트 같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중략)

글을 쓸 때도 비슷한 몰입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판단해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래를 계속 시뮬레이션하고 갈등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상상의 근육이 붙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상상이나 몽상은 '허무맹랑한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뇌의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고, 내가 어떤 나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일이다. 첫 문장에서 그 모든 것이 시작된다. (p.82)

 

늘 써왔던 글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하던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에게 궁금해했던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등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적어준다. 그리고 형편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시작해보라 다독인다. 힘을 빼고 일단 시작,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특별해진다는 것을 믿을 것.

일상을 비껴서고 천천히 보면서 관찰하는 법,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사금을 채취하듯 내 안에 남아 글로 나오게 되는 시간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법 등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골몰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될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특히나 문장, 즉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정리한 뒤에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 쓰는 우리는 '자기 합리화'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해주는 것이 김중혁 작가님 답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본다.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우리는 '솔직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욕을 하고 싶고 비아냥거리고 싶고, 남의 성과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은 감정을 쉽게 내보이지 않게 된다.

 

이 책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더 험해지고 거칠어져야만 버틸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중요한 걸 잃어버리기 전에,

무엇이라도 그리고 만들고 쓰는 창작자의 마음으로 살아보길,

 

우리는 서로가 만든 창작물을 들여다보며서 덜 거칠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시든 단순한 이야기이든 상관없다. 무언가를 만들고, 결과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보면 무언가 변할 것이다. (p.283)

 

글쓰기 외에도 작가님의 그림 그리기 특강도 포함되어 있다. 선 하나를 일단 그어보기. 그리기 위해 자세히 관찰해보기. 그 재미를 가르쳐주고 싶은 작가님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