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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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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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중략)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중략)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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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소년, 이랄까. 매정하고도 무능한 아비가 동반자살을 하고자 했던 아이. 살려는 본능이었는지 아가미가 솟아 살아난 아이. 그 아이를 주워온 강하의 할아버지, 그리고 “곤”이라 이름을 붙여준 강하.
<한 스푼의 시간> 속 소년처럼, 로봇은 아니지만 인간사에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소년이 등장해 반갑고도 애정이 갔다. 달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으며 징그럽거나 무섭거나 최소한 낯설다는 말 대신,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뻤던 소년. 그리고 존재를 최초로 존중받게 된 한마디.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새 옷을 입고 글도 새로이 고친 이 아름다운 소설을 같이 많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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