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 e스포츠 대화를 위한 넓고 깊은 지식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조형근 지음 / 넥서스BOOKS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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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가 나오기 이전만 하여도 게임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인식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하루종일 게임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른들은 한결같이 "니는 커서 뭐가 될려고 그러니?" 라고 되물었으며, 게임 폐인이라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나 또한 게임 폐인이기도 했다. 그 당시엔 오락실이 있었고, 50원 , 100원으로 오락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즐겨 하던 게임이 테트리스(벽돌쌓기) 였으며, 그 때 최고기록이 160판까지 넘어섰던 기억이 난다. 요즘 아이들에게 160판이라 하면 감이 안 올테지만 한자리에서 3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안가고 오락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중학교 때 반 친구가 내 별명을 '블록(벽돌)'이라 지었을까, 온라인 한게임 테트리스가 나올 때 그 때 등급이 '신'이었고 4500 포인트를 넘어섰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스타크레프트의 등장은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그 당시 컴퓨터 사양은 대다수 팬티엄 4, 셀러론이었으며, 인터넷 속도는 1M 가 채 되지 않는 느린 속도였다. 하지만 블리자드에서 만든 스타크래프트는 대한민국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일으켰으며, 대학교 수업이 마치면 친구들은 PC 방이나 하숙집에 모여 게임하기 일쑤였다. PC 방은 곳곳에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게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대한민국 사회에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PC 방마다 컴퓨터 사양을 올려놓고, 인터넷 속도가 T1 이라는 홍보에 열을 올렸던 그 때 대부분의 PC 방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스타크래프트 열풍 덕분이 아닌 가 싶다.


그렇게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을 잉태하였으며, 제 1세대 프로 게이머 임요환, 기욤 패트리, 홍진호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으로 등장하게 된다. 책에는 제1호 프로 게이머를 1977년생 신주영이라 소개하고 있다. 스타 크래프트는 그렇게 우리 삶에 파고 들었으며, 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활용해 1대 1게임으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면 왕따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열광했고 즐겨 했다. 프로 게임단이 만들어지고, 기업 후원을 받던 시기도 그때였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요즘 방송으로 자주 나오는 기욤 패트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당시 기욤 패트리는 차가운 이미지에 감히 대화를 하기 힘든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온게임넷에서 방영하는 스타크레프트 게임에서 독특한 우주복 차림으로 게임을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스트크래프트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게임을 즐겨 하게 된다. 롤 게임이라 부르는 리고오브 레전드가 그것이며, 스타 크레프트가 1 대1 게임이라면 리그오브 레전드는 5대 5게임으로, 팀이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그건 프로게임단이 증가되는 게기가 되었고, 프로게임단이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되는  게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게임의 영역에 감독이 있고 코치가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로 게임의 성장과 함께 리그오브 레전드에 대한 즐거움도 배가 되었다. 사실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게이머는 잘 알고 있지만, 리그오브 레전드를 잘하는 게이머는 잘 모른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게임산업의 성장은 프로게이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게 되었다. 케이블 방송에만 나오던 이들이 이젠 지상파에도 등장하는 게기가 되었고, 그 대표적인 경우가 임요환과 홍진호였다. 사실 홍진호는 그 때 당시 항상 2인자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이 징크스로 자리잡게 된다.폭풍 저그라는 닉넴이 붙었던 홍진호의 실체를 알게 된건 공교롭게도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나왔던 모습 그 자체였다. 임요환은 세월이 흘러 여배우 김가연과 결혼해 알콩달콩 살고 있으며, 기욤 패트리는 고국 캐나다가 아닌 한국에서 10년이 넘게 방송인으로 지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프로 게이머가 모든 게임을 다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도 카트라이더를 하다가 드리프트를 잘못해 벽에 밖은 경험이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이건 일종의 선입견이라 할 수 있으며 당연한 것이다. 육상 선수가 야구를 잘하지 못하고, 야구 선수가 농구를 잘 하지 못하는 건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게임의 세계에선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모든 게임을 잘할 거라는 선입견이 우리들에게 존재한다. 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분명있었다. 초기 프로게이머 1세대는 세상의 변견에 맞서서 매사 조심조심 했지만, 최근에 일어난 승부조작 사건은 프로 게임 산업의 위축을 초래하게 되었다. 기업의 후원이 끊어지게 되었고, 프로 게이머에 대한 이미지가 하락될 수 박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뉴스는 일반 스포츠 선수들의 승부 조작에 비해 알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재윤 선수가 승부 조작을 했다는 말을 주변 사람에게 하면, 먼저 마재윤이 누구지 반문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e-스포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내가 모르는 상식들도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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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Rising: Changing the World One Girl at a Time (Hardcover)
Tanya Lee Stone / Wendy Lamb Books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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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 차별로 인해 교육받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소녀들을 카메라를 통해 밀착취재하면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이 발달한 지구촌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왔으며, 남녀 평등이 현실이 된 것이 채 30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실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가난에서 벗어난 이후였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먼저 오래살 수 있다는 것이 눈길이 갑니다. 조혼으로 인해 10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소녀들의 운명,자신에게 놓여진 운명에 대해 스스로 거부할 기회조차 박탈되는 것입니다. 가난해서, 그리고 사회적인 문화나 관습으로 인해서, 그들은 남자들이 맏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고,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한 채 숨죽이면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여성 차별이 있는 곳, 여성의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곳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강제 결혼과 노예로서 살아가면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가까운 방글라데시, 부르키나 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기니,말리. 니제르, 남수단, 이들 국가는 18세 이전에 결혼한 조혼율이 50퍼센트 이상에 달하며, 그녀들은 거의 자신의 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시피 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여성 교육을 엄격히 금지해 왔으며, 그 관습이 탈레반이 물러난 현재에도 존재합니다. 


여성 교육이 현실화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서울에 올라가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야 했으며, 그것은 가난이 되물림되는 이유가 됩니다. 사회 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농사를 짓는 이들이 대부분인 사회 구조 속에서 대한민국은 2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세상은 달라지게 됩니다. 남성의 일자리만으로는 2차 산업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채워질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으며, 여성의 의식이 깨어나게 됩니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붖조리에 대해 숨죽이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남녀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겁니다. 방글라데시, 이라크, 이란과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처럼 소수의 여성에게만 주여지는 공부의 기회가 넓어지려면 사회가 안정되어야 하며, 사회 구조도 바뀌어야 여성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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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Rising: Changing the World One Girl at a Time (Library Binding)
Tanya Lee Stone / Wendy Lamb Books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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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 차별로 인해 교육받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소녀들을 카메라를 통해 밀착취재하면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이 발달한 지구촌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왔으며, 남녀 평등이 현실이 된 것이 채 30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실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가난에서 벗어난 이후였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먼저 오래살 수 있다는 것이 눈길이 갑니다. 조혼으로 인해 10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소녀들의 운명,자신에게 놓여진 운명에 대해 스스로 거부할 기회조차 박탈되는 것입니다. 가난해서, 그리고 사회적인 문화나 관습으로 인해서, 그들은 남자들이 맏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고,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한 채 숨죽이면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여성 차별이 있는 곳, 여성의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곳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강제 결혼과 노예로서 살아가면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가까운 방글라데시, 부르키나 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기니,말리. 니제르, 남수단, 이들 국가는 18세 이전에 결혼한 조혼율이 50퍼센트 이상에 달하며, 그녀들은 거의 자신의 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시피 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여성 교육을 엄격히 금지해 왔으며, 그 관습이 탈레반이 물러난 현재에도 존재합니다. 


여성 교육이 현실화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서울에 올라가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야 했으며, 그것은 가난이 되물림되는 이유가 됩니다. 사회 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농사를 짓는 이들이 대부분인 사회 구조 속에서 대한민국은 2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세상은 달라지게 됩니다. 남성의 일자리만으로는 2차 산업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채워질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으며, 여성의 의식이 깨어나게 됩니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붖조리에 대해 숨죽이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남녀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겁니다. 방글라데시, 이라크, 이란과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처럼 소수의 여성에게만 주여지는 공부의 기회가 넓어지려면 사회가 안정되어야 하며, 사회 구조도 바뀌어야 여성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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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라이징 - 세상을 바꾼 소녀들
타냐 리 스톤 지음, 걸 라이징 도움, 여채영 옮김 / 다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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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여성 차별로 인해 교육받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소녀들을 카메라를 통해 밀착취재하면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이 발달한 지구촌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왔으며, 남녀 평등이 현실이 된 것이 채 30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실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가난에서 벗어난 이후였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먼저 오래살 수 있다는 것이 눈길이 갑니다. 조혼으로 인해 10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소녀들의 운명,자신에게 놓여진 운명에 대해 스스로 거부할 기회조차 박탈되는 것입니다. 가난해서, 그리고 사회적인 문화나 관습으로 인해서, 그들은 남자들이 맏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고,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한 채 숨죽이면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여성 차별이 있는 곳, 여성의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곳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강제 결혼과 노예로서 살아가면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가까운 방글라데시, 부르키나 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기니,말리. 니제르, 남수단, 이들 국가는 18세 이전에 결혼한 조혼율이 50퍼센트 이상에 달하며, 그녀들은 거의 자신의 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시피 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여성 교육을 엄격히 금지해 왔으며, 그 관습이 탈레반이 물러난 현재에도 존재합니다. 


여성 교육이 현실화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서울에 올라가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야 했으며, 그것은 가난이 되물림되는 이유가 됩니다. 사회 구조가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으며, 농사를 짓는 이들이 대부분인 사회 구조 속에서 대한민국은 2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세상은 달라지게 됩니다. 남성의 일자리만으로는 2차 산업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채워질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으며, 여성의 의식이 깨어나게 됩니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붖조리에 대해 숨죽이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남녀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겁니다. 방글라데시, 이라크, 이란과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처럼 소수의 여성에게만 주여지는 공부의 기회가 넓어지려면 사회가 안정되어야 하며, 사회 구조도 바뀌어야 여성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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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ise of Time (CD-Audio)
줄리언 반스 / W F Howes Ltd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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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우리는 잔인한 지도자라 부른다. 스탈린도 히틀러 못지 않은 잔인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유댕니을 죽음으로 몰았던 히틀러와 달리 스타린은 독재를 하면서 피의 대숙청을 벌이게 된다. 수백만이 희생된 가운데, 그 누구도 스탈린에게 대들지 못했던 제2차 세계대전, 그 시대를 오롯히 견뎌온 이가 있었다. 그는 드미트리 드미트리 예비치라 부르면서 쇼스타코비치라 부르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예술가로서 스타린 독재를 몸소 경험하면서, 스스로 죽음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1936년 스탈린이 있었던 그 자리에 새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올렸던 쇼스타코비치, 그러나 그 오페라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는 스탈린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 했으며,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투하쳅스키 대원수의 반역과 함께 그에게는 천재의 작곡가에서 비극의 작곡가로 추락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스탈린 독재 시대엔 두가지 부류가 존재하게 된다. 러시아인이거나 소비에트인이거나, 스탈린 체제에 반하는 인물은 러시아인이라 불리었고, 숙청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검열이 일상이 되어 버린 그 시대상, 스탈린의 말한마디는 소비에트 연방의 법이 되어 버렸으며, 쇼스타코비에게 좋은 찬사와 비평 일색이었던 언론은 1936년 새 오페라를 스탈린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비난을 얻게 되었으며, 언론은 그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아야 했다. 굴욕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하면서 독재자 스탈린이 좋아하는 것과 취향을 알아내 선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주변 예술가들이 숙청되어 소리없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는 감내하고 자신의 내면을 숨겨야 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스탈린의 눈밖에 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1936년 윤년은 다시 1948년 유녕이 되어 돌아왔으며, 1972년 다시 윤년이 되어 쇼스타코비치 앞에 그날이 찾아오게 된다.


참고 견디는 것, 소비에트의 독재자 스탈린은 죽고 말았다. 그 주변 인물들도 하나 둘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에트는 달라지지 않았고, 쇼스타코비치에게 또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권력이 새로운 권력으로 이향하되면서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했던 음악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추구했던 그 음악이, 스탈린 독재에서 벗어나면서 그는 대중들의 비난에 놓여질 수 밖에 없었으며, 숨어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은 감내하고 견뎌야 했으며, 쇼스카코비치는 그 시대의 표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죄를 지목하고, 되풀이해 말하고, 그 결과를 영원히 경고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음악이 아니라 혼돈' 은 학교 교과서가 되었고, 음악사에서 음악학교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p111)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은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가 낙관주의가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이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그들이 그에게 여러가지 방식과 표현으로, 음악관료들과 신문 사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 했던 대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였다. 용어상 또 하나의 모순이었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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