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arte de amar/ The Art of Loving (Hardcover, Translation) - Una Investigacion Sobre La Naturaleza Del Amor │ An Investigation About the Nature of Love
Fromm, Erich / Paidos Iberica Ediciones S A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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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50-)


역설적 논리학은 신의 개념과 중요한 관련을 갖고 있다.신이 궁극적 실재를 의미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모순에서 실재를 지각하는 한, 신에 대해서는 적극적 진술이 불가능하다.베다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관념은 궁극적 형태로 생각된다. (-113-)


자본주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적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다. 상품시장은 상품이 교환되는 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획득과 판매를 결정한다. 유용한 사물, 유용한 인력과 기술은 모두 상품화된다. 그것들은 시장의 조건하에서 자유로이 공정하게 거래된다. (-124-)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람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 상태이다. 각성 사태는 게으름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182-)


사실상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그것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8-)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다.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고,더구나 '사랑'따위는 이제 감각적 쾌락 내지는 매음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개탄의 영역을 넘어서 있지 않은가. (-227-)


책을 읽다보면 읽은 듯 익숙하고, 안 읽은 듯 익숙한 책이 있다.사람과 책 제목이 익숙한 책 그것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이 책은 1950년대에 쓰여졌으며, 처음 250만부의 책이 팔리게 된다.소위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서 , 스테디 세러의 장르에 다다르게 되었다.그의 책은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수많은 책들에 영감의 메시지를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책을 오마주하는 책들도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기술이 있으며, 사랑의 역설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회에 잇어서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었다.아담과 이브가 나누었던 그 순수한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게 되고, 왜곡은 불가피해졌다.어느덧 우리가 생각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닌 물적 가치로서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고,지극이 자본주의 논리의 원칙에 다른 사랑을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하게 된다.즉 사랑을 하면서 다른 곳을 처다보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내 옆에 잇는 사랑도 결국 떠나갈 수 있는 일회성의 사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상식 아닌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부간의 사랑, 자녀와 부모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죽 자본,돈의 가치에 의해서 사랑은 매겨지게 되었고,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지만, 그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짚어 나가고 있었다.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은 항상 의심하게 되는 사랑이었고, 인간이 따져보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사랑조차도 불완전한 사랑에 머물러 있었다.온전한 사랑,일관된 사랑을 회족하기 위해서,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대적 관점에서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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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Loving (Paperback)
Fromm, Erich / Thorsons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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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50-)


역설적 논리학은 신의 개념과 중요한 관련을 갖고 있다.신이 궁극적 실재를 의미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모순에서 실재를 지각하는 한, 신에 대해서는 적극적 진술이 불가능하다.베다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관념은 궁극적 형태로 생각된다. (-113-)


자본주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적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다. 상품시장은 상품이 교환되는 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획득과 판매를 결정한다. 유용한 사물, 유용한 인력과 기술은 모두 상품화된다. 그것들은 시장의 조건하에서 자유로이 공정하게 거래된다. (-124-)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람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 상태이다. 각성 사태는 게으름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182-)


사실상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그것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8-)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다.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고,더구나 '사랑'따위는 이제 감각적 쾌락 내지는 매음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개탄의 영역을 넘어서 있지 않은가. (-227-)


책을 읽다보면 읽은 듯 익숙하고, 안 읽은 듯 익숙한 책이 있다.사람과 책 제목이 익숙한 책 그것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이 책은 1950년대에 쓰여졌으며, 처음 250만부의 책이 팔리게 된다.소위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서 , 스테디 세러의 장르에 다다르게 되었다.그의 책은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수많은 책들에 영감의 메시지를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책을 오마주하는 책들도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기술이 있으며, 사랑의 역설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회에 잇어서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었다.아담과 이브가 나누었던 그 순수한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게 되고, 왜곡은 불가피해졌다.어느덧 우리가 생각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닌 물적 가치로서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고,지극이 자본주의 논리의 원칙에 다른 사랑을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하게 된다.즉 사랑을 하면서 다른 곳을 처다보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내 옆에 잇는 사랑도 결국 떠나갈 수 있는 일회성의 사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상식 아닌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부간의 사랑, 자녀와 부모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죽 자본,돈의 가치에 의해서 사랑은 매겨지게 되었고,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지만, 그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짚어 나가고 있었다.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은 항상 의심하게 되는 사랑이었고, 인간이 따져보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사랑조차도 불완전한 사랑에 머물러 있었다.온전한 사랑,일관된 사랑을 회족하기 위해서,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대적 관점에서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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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Loving (Paperback) - 『사랑의 기술』영문판
에리히 프롬 지음 / HarperPerennial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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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50-)


역설적 논리학은 신의 개념과 중요한 관련을 갖고 있다.신이 궁극적 실재를 의미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모순에서 실재를 지각하는 한, 신에 대해서는 적극적 진술이 불가능하다.베다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관념은 궁극적 형태로 생각된다. (-113-)


자본주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적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다. 상품시장은 상품이 교환되는 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획득과 판매를 결정한다. 유용한 사물, 유용한 인력과 기술은 모두 상품화된다. 그것들은 시장의 조건하에서 자유로이 공정하게 거래된다. (-124-)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람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 상태이다. 각성 사태는 게으름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182-)


사실상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그것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8-)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다.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고,더구나 '사랑'따위는 이제 감각적 쾌락 내지는 매음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개탄의 영역을 넘어서 있지 않은가. (-227-)


책을 읽다보면 읽은 듯 익숙하고, 안 읽은 듯 익숙한 책이 있다.사람과 책 제목이 익숙한 책 그것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이 책은 1950년대에 쓰여졌으며, 처음 250만부의 책이 팔리게 된다.소위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서 , 스테디 세러의 장르에 다다르게 되었다.그의 책은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수많은 책들에 영감의 메시지를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책을 오마주하는 책들도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기술이 있으며, 사랑의 역설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회에 잇어서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었다.아담과 이브가 나누었던 그 순수한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게 되고, 왜곡은 불가피해졌다.어느덧 우리가 생각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닌 물적 가치로서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고,지극이 자본주의 논리의 원칙에 다른 사랑을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하게 된다.즉 사랑을 하면서 다른 곳을 처다보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내 옆에 잇는 사랑도 결국 떠나갈 수 있는 일회성의 사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상식 아닌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부간의 사랑, 자녀와 부모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죽 자본,돈의 가치에 의해서 사랑은 매겨지게 되었고,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지만, 그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짚어 나가고 있었다.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은 항상 의심하게 되는 사랑이었고, 인간이 따져보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사랑조차도 불완전한 사랑에 머물러 있었다.온전한 사랑,일관된 사랑을 회족하기 위해서,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대적 관점에서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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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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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50-)


역설적 논리학은 신의 개념과 중요한 관련을 갖고 있다.신이 궁극적 실재를 의미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모순에서 실재를 지각하는 한, 신에 대해서는 적극적 진술이 불가능하다.베다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관념은 궁극적 형태로 생각된다. (-113-)


자본주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적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다. 상품시장은 상품이 교환되는 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획득과 판매를 결정한다. 유용한 사물, 유용한 인력과 기술은 모두 상품화된다. 그것들은 시장의 조건하에서 자유로이 공정하게 거래된다. (-124-)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람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 상태이다. 각성 사태는 게으름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182-)


사실상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그것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8-)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다.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고,더구나 '사랑'따위는 이제 감각적 쾌락 내지는 매음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개탄의 영역을 넘어서 있지 않은가. (-227-)


책을 읽다보면 읽은 듯 익숙하고, 안 읽은 듯 익숙한 책이 있다.사람과 책 제목이 익숙한 책 그것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이 책은 1950년대에 쓰여졌으며, 처음 250만부의 책이 팔리게 된다.소위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서 , 스테디 세러의 장르에 다다르게 되었다.그의 책은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수많은 책들에 영감의 메시지를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책을 오마주하는 책들도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기술이 있으며, 사랑의 역설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회에 잇어서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었다.아담과 이브가 나누었던 그 순수한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게 되고, 왜곡은 불가피해졌다.어느덧 우리가 생각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닌 물적 가치로서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고,지극이 자본주의 논리의 원칙에 다른 사랑을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하게 된다.즉 사랑을 하면서 다른 곳을 처다보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내 옆에 잇는 사랑도 결국 떠나갈 수 있는 일회성의 사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상식 아닌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부간의 사랑, 자녀와 부모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죽 자본,돈의 가치에 의해서 사랑은 매겨지게 되었고,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지만, 그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짚어 나가고 있었다.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은 항상 의심하게 되는 사랑이었고, 인간이 따져보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사랑조차도 불완전한 사랑에 머물러 있었다.온전한 사랑,일관된 사랑을 회족하기 위해서,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대적 관점에서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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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elf, No Problem: How Neuropsychology Is Catching Up to Buddhism (Paperback)
크리스 나이바우어 / Hierophant Publishing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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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는 일종의 해석장치 또는 이야기꾼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겠다.패턴의 인지,언어, 지도 만들기,분류 및 범주화는 모두 좌뇌의 기능이다. 그리고 실험적 증거에 따르면, 바로 이런 기능들이 합쳐져 자아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며, 이 느낌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강하게 믿게 이끈다. 좌뇌의 이런 독특한 기능이 어떻게 자아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가? 게다가 이 허깨비 너머를 보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 왜 이 느낌이 그렇게나 많은 고통을 유발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27-)


수수께끼가 보이는가?
이들 모순된 문장들은 훨씬 더 오래된 선불교 수행법의 현대판쯤 된다고 볼 수 있다.서에서는 이런 문장들을 공안이라고 불렀으며 몰입하면 해석적 마음을 멍하게 만들어 끊임없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이를테면,"당신이 태어나기 전 당신은 어떤 모습이었나? 라든가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손뼉은 어떤 소리가 나는가?"같은 문장이다. 해석적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바보 같기 그지없는 질문이지만, 이들 질문은 분별로는 결코 대답할 수 없다. (-75-)


좌뇌는 일관성, 변함없음을 사랑한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불교에서 '무상'이라고 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다.이 일관성에 대한 갈증이 있기에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자아란 차라리 흘러가는 강물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의 자아는 개념과 인지와 느낌 면에서 항상 변하고 있다.(-99-)


축구시합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존재함과 행함.아이들이 들에서 공을 차는 것,그 외 다른 건 전부 이야기, 해석일 뿐이다.승자,패자,우승한 팀 - 이들 모두 범주,이름표, 패턴,언어, 그리고 생각을 도구로 마들어진 이야기들일 뿐이다. 우리네 인생 전체, 심지어 '나'라는 느낌조차도 그렇게 간주될 수 있다.마치 이 축구시합처럼 말이다. 추상화된 이야기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해매는 것이 문제를 창조한다. 고통은 이들 이야기에 푹 젖어 그것들이 실제가 아님을 잊을 대 온다. (-120-)


다양한 영적 전통 안에서 ,가장 강력한 질문 중 하나가 있다.바로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해석적인 이름표, 비교, 범주,패턴 인지 등 좌뇌가 사용하는 방법으로 대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당신의 마음을 안으로 돌려, 거기서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과연 찾을 수 있는지 시도해 보는 것이다. (-197-)


이 책은 뇌과학이다. 저자는 인지 신경심리학 박사로서, 서양의 심리학의 가치에 덧대어 동양의 철학 선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풀지 못하는 뇌의 신비를 풀어보고 자 하였다.저자가 서양의 철학이 아닌 동양의 철학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의 연구 분야, 즉 인지심리학이 동양의 철학적인 가치와 의미에 부합한다는 걸 판단하였기 때문이다.저자는 우리의 일상 속에 수많은 모순들이 왜 일어나고,그것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지배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부분, 좌뇌가 인간의 생각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인지심리학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다.즉 이 책은 우리의 좌뇌가 세상을 프리즘화하고 있으며, 언어를 통해 어떤 사물과 상징적인 개념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하고, 패턴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파악하고 있다.


즉 우리가 누군가에게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잇었다.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얽히게 되고, 집착하게 된다.특히 예측되지 않은 상황, 준비되지 않은 순간,우리의 뇌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왜곡과 편견 속에서 그르친 행동을 하게 된다.좌뇌가 세상에 보이는 것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좌뇌의 반대쪽,우뇌의 특징과 선불교에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 안에서 세상의 모든 만물은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가고 있으며, 내 앞에 고인 어떤 생각들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단절할 수 있는지,그 답을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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