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에 우아한 쉼표를 찍다 - 주부 공감 에세이
강민주 지음 / 바이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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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저 끝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작은 점에 불과하다.그 작은 점에 수십억의 지구인이 살아가고 있다. 우주 전체로 보자면 티끌에 불과한 공간에서 우리는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때로는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들은 때로는 나 스스로 힘들게 하고, 간간히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얻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머물러 있는 강민주씨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된다. 


'주위를 관찰하고 챙기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컷다는 사실 또한 결혼을 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p14)


저자는 결혼 후 출산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간다는 게 '주위를 관찰하고 챙기는 일'의 연속이다. 직장에서도 그걸 실천하지 못했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부터 자신의 단점을 깨닫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 속에서 엄마로서의 삶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아이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였지만, 자신을 성장하게 해 주는 특별한 존재였다. 스스로 무심하고 ,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저자는 느끼게 된다.


몇 년에 걸쳐 나를 덮쳐온 주부라는 타이틀은,정말 거대한 그 무엇이었다. 주부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갱신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정신없이 지난날의 어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반찬투정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에 대해, 엄마는 왜 아침마다 짜증을 내는지에 대해, 식탁에 밥을 올려놓기도 전에 밥 먹으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더불어 엄마의 숨은 노동도 알게 되었다. (p25)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아는 것 같다. 딸에서 엄마가 되면서 저자는 비로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느끼게 된다. 자신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어마의 다양한 감정의 동선들, 그 동선이 모두 다 자신의 몫으로 돌아왔으며, 엄마에게 후회와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산다는 게 어쩌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딸로 되물림 되는 것, 그 삶의 연속선상에서 서로는추억이 교차되고, 경험이 교차되고, 삶이 교차된다.


아이를 낳고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우울했다. 아이는 백일도, 돌도 지나서 열심히 자라는 중이었다. 부드러운 머리칼, 오동통하게 오른 볼, 인중을 삐죽 내밀며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막 걸음마를 시작해서 목도리도마뱀처럼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 (p83)


아이가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아이의 귀여움이 크면 클수록 우울함도 커져 가게 된다.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더 힘들어 했고,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군가에게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연속되고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되었다. 제주도로 여행을 생각한 건 그 때였다.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했고, 저자는 그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된다. 


어느 순간 그 착함이 남을 위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가 아닌 내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회의감이 몰려왔다. 요즘에는 내가 왜 이렇게 저자세여야 하는지, 내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리고 있는게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얼굴 붉히지 않는다는 대인배의 마인드가 아니라, 그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을'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p100)


'착함'이라는 개념은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놀부는 악하지만, 흥부는 착하다. 하지만 그건 전래동화 속 이야기다.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라도 흥부가 될 수 있고, 놀부가 될 수 있다. 흥부의 탈을 쓰고 때로는 놀부로서 살아갈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착하게 살려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흥부가 롤모델이라서 그런 게 아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닌지, 내 안의 낮은 자존감이 나를 착함으로 이끌고 있음을 저자의 글 속에서 찾아내고 있었고, 내가 착함을 내보임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주길 원하였다.


나는 엄마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데, 이 책에서 공감가는 생각과 글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엄마로서 살아간다는 게 때로는 팍팍하고, 때로는 자신을 한계로 내모는 일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나약함을 감추고 아이가 아닌 겉모습만 어른이 되어버린 그 모습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우울하지만, 그 우울함을 드러낼 수 없고, 힘들지만 그 힘듦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강민주씨 홀로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에 모든 엄마들 속에 감춰져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엄마들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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