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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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나에겐 '서문'보다 '말머리'가 더 익숙하다. 책의 본문에 앞서 등장하는 책의 서문은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 작가의 집필의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책 제목이 책 전체의 모든 걸 압축한다면 서문은 그 암호에 해당된다. 즉 집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은 그 집의 자물쇠이다. 그동안 서문을 모아놓은 책들을 읽어본 적 없었기에 이 책이신선했으며, 작가는 왜 서문을 모아놓은 책을 춠간했을까 그 목적을 알고 싶어졌다.


나의 독서 습관은 서문을 스쳐 지나가거나 간략하게 읽고 지나가는 스타일이다. 책에 대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결정하지만, 그것을 꼼꼼히 읽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책들의 서문을 읽는게 상당히 낯설었다. 하지만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이라면 서문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책을 고를 때 책 제목에 솔깃하다면, 그 책을 사느냐 마느냐 결정적인 요소는 입소문과 책 목차와 서문일 것이다. 또한 서문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책 내용에서 작가의 생각이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소설의 서문과, 인문, 과학, 사회 분야의 서문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 책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남겨 놓은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다윈의 <종의 기원>의 서문을 상호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의 특징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을 채워 나간다면, 인문 과학은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해 왔던 흔적들이 채워져 있으며,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의 경우 니체가 살았던 그 시기의 사회적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바람과 조수, 몇몇 항해에서의 변주곡과 방패 문장, 선원들의 옷차림, 퍽풍우 속에서의 배의 조종에 관한 상세한 묘사, 경도와 위도에 관한 설명 등의 수많은 구절을 내가 과감히 삭제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부피는 지금의 두 배 정도로 늘어났을 것이다.(p108)


이 문장은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서문이다. 중학교 때 읽었던 두권으로 된 걸리버 여행기는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인간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여과없이 그려낸 소설은 조너선 스위프트가 성직자로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남긴 저서였다. 또한 이 서문을 읽고 난 이후 걸리버 여행기의 삭제되지 않은 원본이 궁금했다. 책의 내용이 늘어지더라도, 그 책이 가지는 가치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기억 속 소설의 잔상을 회복시키고 싶어졌다.


이 한 권의 책이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란 여전히 열정이 앞서는 오늘 시점에서 ,그것도 정히 필요한 자료 없이는 도저히 씌여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으리라 (p316)


하나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책.그 책이 바로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이다. 나는 그의 저서 '나나'를 읽고 이 책을 읽었다. 100년 전 어두운 유럽 사회의 시대상을 그대로 내포하는 이 책은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에 관한 시대적 증언에 해당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나오면 항상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는 단골로 등장한다. 시대적 우울을 고스란히 내포한 채, 에밀졸라는 그 시대의 표상이 되었고, 스스로 증언자로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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