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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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언어는 인간의 욕망으로 채워지게 된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게 된다. 특히 인간의 궁금적인 마지막 삶,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언어 독특한 모습을 언어 속에 내재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역사 속에서 신화가 등장하고, 종교가 등장하는 이유, 불멸의 영혼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진 인간은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때로는 자신의 나약함을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죽는 그 순간 뿐 아니라,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 그 모습을 이 책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우리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 19명의 작가들의 인터뷰 안에서 우리는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하였다.


책에는 유럽의 저명한 작가들이 기재되어 있다. 익히 노벨상을 탔거나 노벨상 수상자로서 유력했던 작가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들은 남다른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남다른 죽음이란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되고 있으며, 유럽 사회 안에 존재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전쟁, 아우슈비츠, 독일, 나치와 연결되고 있으며, 유럽인들은 그것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의 자화상은 우리가 친일과 6.25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삶의 끝자리에서 도망나오면서 경험하게 된 체험을 문학으로 승화 시켜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관점보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독특한 메시지를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러디쉬 죽음이 두렵지 않나요?
비토프 인간의 모든 감정들 중 두려움이 가장 나쁜 겁니다. 나는 신이 벌을 내린다고 믿지 않고, 다만 무한한 사랑을 느낄 뿐입니다. (p104)


안드레이 비토프는 러시아 작가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러시아 문학이 추구하였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추구하였다. 러디쉬와 비토프 사이의 대화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실제, 죽음을 감추려 하는 인간의 또다른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감정들 중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죽음에 대해 무한한 사랑이라 말아는 비토프의 내면, 비토프는 우리에게 '세상은 유쾌하게 돌아갑니다. 우리는 죽지만, 세상은 죽지 않기 때문이지요."라는 짤막한 문장을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마이뢰커 나는 죽음을 미워합니다. 내가 저승문 바로 앞까지 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80세가 되면 죽음이 찾아올 것을 늘 예상해야지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끔직한 생각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목을 조여 오는 생각이지요. (p141)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인 프리데리케 마이뢰거는 죽음에 대해 솔직하면서 담백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메시지를 읽으면서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생각이 났다. '나이가 먹었으니까 자식들을 위해 얼른 죽어야지' 반복하는 어르신들의 속마음은 아직 죽고 싶지 않다는 걸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그 누구도 유쾌하지 않는 죽음에 대해서,  목을 조여온다는 게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의 형태였다.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 우리는 살아가려는 의지조차 내려놓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라이히라니츠키 사람이 늙으면 삶이 고달퍼지지. 영 불편해. 이 나이가 되도록 사는게 낙은 아니라는 말밖애 할 말이 없어. (p205)


폴란드 태생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유대인이며, 독일의 모순과 이중성을 그대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강제 추방당하였고, 강제수용소에서 부모와 남동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메시지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일치한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자신이 반드시 입어야 하는 잠수복과 같은 존재이다. 미디어는 인간이 체험하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는 유난히 박하며, 감추려 한다, 오래 산다는 게 낙(행복)이라는 걸 반복적으로  노출시키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 내 앞에 놓여진 삶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이 책에 대해서 전쟁을 마주하면서 죽음을 체험하게 된 그들의 독특한 시선은 지금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성격이다. 죽음에 대해서 높은 두개의 산봉우리에서 서로의 촛불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서로에게 크게 연향을 주지 않는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고,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하지만, 크게 연연하거나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깊이 들어갈수록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이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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