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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의학 콘서트
이문필.강선주 외 지음, 박민철 감수 / 빅북 / 2018년 1월
평점 :
우리는 배움의 끈을 언제쯤 놓을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 다니면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과 지혜를 터득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앞에 놓여진 배움이라는 궁극적인 가치와 배움의 확장성은 어느 순간 폭발하였고,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시대엔 없었던 이상한 시대의 모습을 지금 시대에 보여주고 있다. 배움과 교육에 대해서 집착하고 광기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것,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독특한 가치관은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과 불신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반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내것으로 가져오려는 이기적인 모습도 공존하고 있다. 배움과 학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점층적이며, 단계적으로 이루워진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의학은 하나의 동떨어진 전문 분야가 아니며, 수천년 동안 천문학, 철학, 수학, 점성술, 연금술, 과학, 물리학, 화학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치니고 있다. 의학이 지금처럼 하나의 분야로 동떨어진 시기는 산업 혁명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과학에 능통하였고, 의학에 관심가지는 건 어쩌면 그 시대상으로는 당연한 것이다. 지금 현대에서 보여지는 학문이 분리된 형태가 어쩌면 더 이질적이고 , 다른 학문을 배척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의학은 다른 학문과 공존하면서 함께 발전했다.
이 책은 500페이지로 된 두꺼운 책이다. 전체적 이야기를 모두 드러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초기의 의학의 모습은 허술하였고, 오류가 가득하였다. 그들은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해 왔다. 이집트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그리스로 바뀌면서 의학은 체계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쳥태로 의학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서양에 4체액설이 있고, 동양에 음양 오행설이 있는 것처럼, 의학은 서로 다른 형태로 줄기를 뻣어나가지만 그 본질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이 의학의 실체이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의 의학의 형태가 만들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의학은 IT 기술과 결합해 인공지능 의료가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인간이 아닌 로봇에 의해 질병을 찾아내고, 외과 수술을 하는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인간은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 테스트를 먼저 할 것이다.
종교와 의학의 충동. 이 책의 전채를 들여다 보면 산업혁명 이전의 이학은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의학은 지금과 다르지만, 현대 의학의 초석을 만들어갔으며, 체계화하고, 분리해 나갔다. 하지만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의학은 점차 천시되었고, 종교가 대세가 되었다. 종교와 의학이 충돌하면 의학은 배척 되고, 종교를 수용하게 된다. 흑사병, 페스트,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유럽 사회를 휩쓸고, 사회적 갈등은 의학이 아닌 종교적 믿음을 우선하였으며,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의학 기술의 발전을 도태시켜 버렸다. 한편 십자군 정쟁 이후 , 의학은 유럽이 아닌 아랍으로 옮겨갔으며, 이슬람 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의료 기술은 아랍으로 건너갔으며, 그들은 여기에 약초를 활용한 다양한 약제를 개발하였으며, 페르시아에서는 이술랑 약사 제도를 발전 시켜 나가게 된다,. 이 시기에 쓰여진 책이 아비센나의 <의학 정전>이며, 그 책은 아랍권 뿐 아니라 유럽으로 역수출되어 유럽의 의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중세가 지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였다. 학문과 예술의 전성기 시대, 그 시기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등장하였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체 검안소에서 시신을 해부하면서 자신의 의학을 100여점의 인체 모형도로 기록해 나가게 된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은 베살리우스 에 의해 해부학은 발전하였고, 인간의 내부의 신체의 특징을 분석하게 된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는 측량의 시대였으며, 측량기술의 발전과 현미경으로 인해 의학 기술은 현대의 형태를 갖춰 나가게 된다. 반면 17세기 유럽의 의학은 새로운 암흑기였다. 외과적 수술을 의사가 아닌 이발사가 시행하였고, 수술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여전히 고대 그리스의 4체액설을 신봉하였으며, 사람의 피를 뽑은 사혈시술이 성행하였다. 사람들이 사혈 시술로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그동안 익히 알지 못했던 단 하나의 사실, 여성의 신체 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의학적으로 발전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난소와 난자에 대해서 개념이 정립된 것은 15세기 이후였으며, 여성의 신체를 해부하고 그 안을 들여다 본다는 건 불경한 행위였다. 여성이 아기를 낳는 건 의사가 아닌 조산사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아기의 죽음과 산모의 죽음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학 기술이 남성 중심으로, 최상류츨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