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인 위대한 여인들
조민기 지음 / 미래지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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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조민기님의 <조선임금 잔혹사>,<조선의 2인자들>을 읽었기에 ,한국사 뿐 아니라 세계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다. 세계사 속의 위대한 여성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역사 속에서 존재적 가치에 대해서 마주할 수 있어서 흥미 반 기대 반 ,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책을 펼쳐드는 순간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세계사 속의 여성의 활약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다섯가지 파트로 나뉘고 있다. 다섯가지 파트는 파멸의 길을 걷다, 군주의 길을 걷다, 매혹의 길을 걷다, 예술의 길을 걷다, 워킹맘의 길을 걷다이며,14명의 여성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세명의 여성들, 클레오파트라, 메리스튜어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며, 역사적 교훈과 마주하게 된다.


클레오파트라. 역사 속에서, 영화 속에서, 뮤지컬로도 자주 언급되었던 인물이며, 이집트 여왕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카이사르와 연관된 여성이며, 로마의 역사를 공부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풍요로웠던 이집트에서의 삶, 카이사르의 마음을 훔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았다. 로마의 절대권력자로서 카이사르와 그의 정략결혼의 상대였던 클레오파트라의 인생은 순항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예기치 않은 암살로 인해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함께 운명공동체가 되었고, 로마 초대 황제이자, 카이사르의 외조카 손자였던 옥타비아누스와 결전을 치루게 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해전 악티움 해전으로 안토니우스는 패배하였고, 두 사람은 결국 운명공동체로서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으며, 프롤레 마이오스 왕가는 역사속에 사라지게 된다. 


메리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며,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여왕의 자격을 갖추게 된 메리스튜어트, 하지만 그것은 독이 된다. 17세 스코틀랜드 왕관을 쓰게 되었고, 프랑스 프랑스 왕비가 된 그녀이지만, 프랑스 국민의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폐위 되고 말았다. 영원한 앙숙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메리 스튜어트의 재혼 과정에서 메리의 또다른 적이자 이복오빠인 모레이 백작의 주선으로 메리는 또다른 남편을 맞이하게 되는데, 메리 스튜어트는 모레이 백작이 고른 남자가 아닌 가톨릭 신도였던 헨리 스튜어트를 사랑하게 된다. 권력보다 사랑을 더 원했던 메리스튜어트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헨리와의 결혼을 강행하게 된다. 여기서 역사를 보면 한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인정받지 않은 결혼은 축복보다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권력보다 사랑을 먼저 선택하였고, 권력도 내려놓치 않았다. 이것은 비극의 전초전이며, 헨리의 죽음, 헨리의 죽음 배후에 숨어있는 보스웰 백작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메리를 이용하였고, 메리가 폐위되는데 결정적인 원인제공자가 되었다. 


마리앙투아네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주였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이 되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5세의 하나 남은 손자 루이16세가 있으며, 두 사람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루이 14세에서 루이 15세로 이어지는 130년간의 재위기간은 프랑스의 르네상스였으며, 그 시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세우게 된다. 마리앙투아네트와 결혼했지만 아내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루이16세의 유일한 취미는 사냥이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로 인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프랑스 사회에 나돌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의 서막이 시작되고 말았다. 마리앙투아네트에게 동성애, 불륜의 아이콘이 된 과정은 '그랬다더라'기 '그랬다'로 변질된 전형적인 소문의 변천 과정에서 야기된 하나의 현상이며,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아이에 아기가 없다느 사실 그 하나로도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해내기에 충분했다.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 사이에 결혼후 오랜 기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루이 15세와 공식 애첩 뒤바리 부인이 저지른 목걸이 구매 사건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러운 악녀로 부각되기에 충분하한 이유가 되었으며,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뮤발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미국 독립운동으로 인해 프랑스 재정이 점차 악화되었으며,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루이 15세와 연관된 '목걸이 사건'을 들쑤시고 말았다. 정작 '목걸이 사건'의 주연들은 죽고 사라졌으며, 그 불똥은 조연이나 엑스트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튀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의 불씨는 결국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처형당하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프랑스 시민혁명이라 부르며 , 프랑스 왕정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일한 혈육 마리 테레즈는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1851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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