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오늘도 일하시는 아버지
정영애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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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100세시대라 부른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식습관의 변화로 수명 연장으로 인해 점점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오래 사느냐가 아닌 현역에 더 오래 머무느냐이다. 60세가 되면 은퇴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90세까지 현역에 머물러 있다는 건 이상적인 삶이다. 저자 정영애씨와 90세 된 그의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보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저자 정영애씨의 아버지는 한의사이다. 학학자였던 조부모의 영향으로 저자의 아버지도 한의사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정영애씨의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한약방에 대한 향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옥집을 삶의 터전 삼아 살림살이와 일터가 겹쳐지며, 학교를 다녀오고 집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 속에서 항상 한의사로서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일본어 교육을 배웠고, 1941년 쓰여진 동의보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렇게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씨앗이 되고 있다. 할아버지에서 , 아버지로, 아바지에서 4남매로 이어지는 의사로서의 길,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의사와 한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약초를 기반으로 한 처방전을 들이밀기 전 항상 자녀들에게 그 약효를 시험해 보았다.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약초의 효능이 검증될 때 그제서야 환자들에게 처방하게 된다. 그 모습 하나 하나 기억하고 있는 정영애씨는 약대를 나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아가고 있다.


책에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오래 산다는 건 어쩌면 견디는 삶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이다. 의사로서의 장남을 앞세워야 했던 아바지의 슬픈 그림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남으로서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을 먼저 앞세우고 이제 자신 또한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건 서글픈 현실이다. 저자는 그걸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역에 있지만 언제 자신의 곁을 떠날 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네 남매를 걱정하는 아버지는 '굽은 나무가 선상르 지킨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자녀들에게 ,손주들과 증손주에게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삶을 추구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되집어 보게 된다. 


젊은 엄마

미루나무 늘어선 길에 흙먼지 구름 피어오르고
단발머리 깡충 무명 치마 입은 가시나
큰아버지 따라 장에 가겠다고 칭얼거린다.
아궁이 불 지펴 가마솥 밥 지으려다 젊은 엄마는 
피식 웃으며 새 옷 입혀줄게 하시면서
장터 옆 굴다리로 친 엄마 찾으러 간다는 가시나 달랜다.
그 길 따라 엄마는 전쟁터 나간 신랑의 편지 기다리며
멀리 산진승 우는 밤이면 호롱불 심지 돋우고 무명옷 기우다가,
낡은 편지 꺼내 읽고 또 읽는 소리 바람결에 흐느낀다.
눈 덮인 산길을 가시나 들쳐 업고, 엄마는
고무신 신은 정강이 푹푹 빠지며 눈보라 휘몰아치는
고객마루 휘적휘적 엎어질 듯 읍내에 다다랐을 때
가시나는 무지갯빛 왕 눈깔사탕 사 달라 손가락질한다
왕사탕 입에 물고 가시나 웃다 잠들었는데
젊은 엄마 남편의 전보 받고 허물어진다.
무지개를 탄 듯 왕사탕이 나에게로 오던 그 빛나던 읍내 장터,
엄마가 나에게 가져다준 아련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젊은 엄마의 서러움이 요동치던 순간인 줄 나는 알지 못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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