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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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말만 하고
나는 내 말만 하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 되는 벽을 느낄 때

꼭 나누고 싶어서
어떤 감동적인 이야길
옆 사람에게 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나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가장 가까운 이들이
그것도 못 참느냐는 눈길로
나를 무심히 바라볼 때

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며
화해의 악수를 청해도
지금은 아니라면서
악수를 거절할 때

누군가 나를 험담한 말이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도착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롭다
쓸쓸하고 쓸쓸해서
하늘만 본다 

이해인 <내가 외로울 땐> 전문 (p165)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볼 때는 작은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을 반추하게 되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이해인 수녀님은 나에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그 분의 인생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부끄러움과 마주하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일상 속에서 감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는지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감사와 겸손함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진정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겸손과 감사함, 믿음과 사랑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해인 수녀님처럼 말이다. 이해인 수녀님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며, 때로는 인간미도 느껴진다. 인간으로서 태어나 남다른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이해인 수녀님조차 그 안에서 권태와 외로움 쓸쓸함이 묻어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나이듦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하게 된다.나이가 들어가는 건 부끄럽지 않다.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지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성숙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감추고 숨기려 한다. 정작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하는 건 또다른 내면일진데, 우리는 외면을 더 중시하면서 지금껏 살아간다.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고 있는 <기차를 타면> 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에 기차는 느림보였다. 청량리까지 가려면 하루 꼬박 시간을 내야 했으며, 강원도에 간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산골짜기 간이역을 따라 비둘기호를 타고 갔던 기억들, 기차안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고 낭만을 즐겼던 그 기억조차 빠름을 추구하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점점 더 잊혀지고 말았다. 세상이 빠름을 추구한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인정미가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정이 사라지는 원인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걸 느낄 때면 담담한 척 하면서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초심을 회복하세요!','사랑의 첫 열정을 지니고 다시 시작하세요!','작은 희생을 즐기세요!' 라고.(p34) 


이 문장의 마지막 '작은 희생을 즐기세요.' 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생각이 바뀐다는 건 사소함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은 희생을 즐긴다면, 서운함이 줄어든다. 매일 매일 희생을 즐긴다면 억울함은 줄어들게 되고, 아쉬움도 사라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느끼는 서운함 조차 먼지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분노하고, 아파하고, 비난하고, 이런 일련의 감정들은 어쩌면 나 스스로 희생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살아가면서 이 단순한 진리를 싱행으로 옮기고 계시며, 그 안에서 반성하고 있다. 단순하면서 단순하지 않은 것, 나에게 필요한 건 지금 당장 미루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남겨놓은 작은 희망의 씨앗이 널리 널리 퍼지도록, 이 책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무언지 되새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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