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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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는 그랬다. 왕과 관련한 역사이거나 외침과 관련한 역사가 상당히 많다. 이순신 장군이 연승을 거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김성일이 일본을 다녀온 기록은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우리의 역사 사료 중에서 조선의 역사가 가장 많이 현존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듬성듬성 기억하고 있을 뿐 제대로 조선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기득권과 권력을 우선하고,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으며, 조선통신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김종광씨가 쓴 역사 소설 <조선 통신사 1,2>와 마주하게 되었다. 


1763년 조일전쟁(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제11차 통신사가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500명의 사내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대마도를 거쳐 일본의 쇼군을 알현하게 된다. 임진년 조일 전쟁이후1604년 선조 37년에 떠난 제1차 통신사는 조일전쟁에 대해서 전쟁피로인을 데려오기 위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3차에 걸친 통신사는 본질적으로 통신사로서 공식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1636년 인조 임금 때 떠난 제4차 통신사 사절단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통신사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때였다. 이후 제11차 통신사는 1763년 8월 3일 영조 임금때 서울을 출발하였고, 332일이 걸려 1764년 7월 8일 조선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이 소설은 1763년 계미 통신사행 즉, 제11차 조선통신사를 다루고 있다.


500명의 사람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우선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서울에서 부산까지 떠나는 그 길을 따라 그들이 머무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할 수 밖에 없다. 왕명에 따라 움직였기에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통신사 일행은 왕명에 따라 움직여야 했으며, 영조 임금의 금주령에 따라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부산진에 도착하게 되었고, 울산과 창원의 기생들과 함께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대마도로 출발하게 된다.


대마도는 지금도 척박한 곳이다. 그들이 조선을 침범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이다. 척박한 땅에서 그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왜적으로서 조선을 치는 일이다. 조선 통신사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된다. 일본 본토와 조선 본토를 연결해 주는 대마도주는 조선 통신사의 수장이었던 정사 조엄과 통신사 일행을 이끌었으며, 다리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그 당시 부산에서 대마도로 가는 길목이 상당히 위험했음을 알 수 있다, 바람의 풍랑에 따라 배를 띄워야 했고, 태풍이 없어야 통신사로서 왕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고, 배가 뒤집히면 100여명의 일해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정사 조엄을 위시하여, 종사관, 역관, 의원, 군관들까지, 더 나아가 노비들까지 함께 동행하는 길은 그렇게 쉽지 않은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다. 조엄이 남긴 책과 조선 통신사에 대한 기록물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현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의 시선으로 현대적인 문법체를 사용하고 잇다. 보편적으로 통신사 하면, 백제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는 그런 형태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역사를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또다른 편견과 선입견이다. 이 책을 읽으면 1차에서 12차까지 조선통신사들은 조선 국내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조선통신사를 적절하게 이용하였으며,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아나기 위해서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이 필요했던 유황과 무기를 일본을 통해 밀무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그들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다. 조선 통신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마도주, 더 나아가 일본은 조선의 인삼을 탐내고 있었으며, 그인삼 재배법을 일본 본국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또한 조선은 대마도주에게 당근과 채찍을 활용해 그들을 구슬리고 있었으며, 조선 통신사는 일종의 유화정책이다.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나갔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가운데 그들의 자화상을 하나 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으며, 우리의 역사 속에서 통신사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더 궁금해졌다. 제11차 조선 통신사를 이끌었던 정사 조엄과 그가 남겨 놓은 해사 일기, 더 나아가 18세기 서역의 문물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사회적 변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겹쳐졌으며, 조선 통신사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본보다 중국을 더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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