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
정제성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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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시간은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꿔 놓는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것 또한 그렇다. 문학은 그 당연한 것을 기록해 놓고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인간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문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언어를 통해서 텍스트를 이용해 재현하고 표현한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해석되고 새롭게 탈바꿈 하는 것은 그러하다. 소설가 정제성씨는 나에게 주어진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게 해 주었고,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시골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 할머니의 따스한 밥그릇이 생각났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는 뭐니해도 밥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집에 온 사람에게 밥을 차려주는 건 당연한 도리였고 예의였다. 소설 속 주인공 아흔살 엄마에게도 그러한 정서가 숨쉬고 있다. 과거의 때를 버리지 못하고, 아궁이에 밥을 지피던 그때의 기억들, 가족들 음식 취향부터 생일상까지 모두 기억하는 엄마는 다섯 남매가 성장하고 커나가는데,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섯 남매들에게 두려움이기도 하다. 엄마의 익숙한 음식 내음새, 시골의 텃밭에서 캐다 밥상위에 올라오는 다양한 음식들, 같은 재료인데, 밥상위에 올라오는 음식은 제각각 달라지게 된다. 엄마의 음식에는 정성이 듬뿍 채워져 있었고, 밥상의 안주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온전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 점점 더 흐려지고 있으며, 자녀들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찌릿찌릿해지고 있다. 


정신이 혼미하고 인지가 온전치 못한 상태이더라도 낯선 곳에서 아버지가 언뜻언뜻 느낄 수치스러움까지 걱정하는 마음이 엄마의 다짐이 되었다. 아버지가 잠깐이라도 온전하게 인식할 그 시간 그 장소에 엄마는 빠짐없이 있고 싶어 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지켜온 것처럼, 엄마도 아내로 그 자리에 머물겠다는 것이 변함없는 엄마의 생각이다. (p131)

엄마의 답은 유연했다. 
조금 전에 그렇다고 해 준 것도 지금은 아니라고도 하고, 아버지의 황당한 주장에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곤란해도 못 들은 체 하지 않았다.
때론 아버지와 같은 병실을 쓰는 치매 친구 같았다. 
그런데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거나 아버지가 지키고 싶어 하는 올바른 것은 어떻게든 지켜주려고 했다.
엄마는 그런 한 가지를 조용조용히 살리기 위해서 천 가지, 만가지의 억지를 날마다 온종일 다 들어주고 있었다. (p1144)


소설의 전체 분위기는 담담하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담담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나의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소설 속 주인공 구순의 엄마는 나의 큰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챙겨야 했던 큰어머니의 모습은 그렇게 그렇게 우리의 엄마의 모습이었고, 슬픔이고 아픔이다. 언젠가 내 곁에서 떠나갈 수 있는데, 요즘은 몸이 아프시다 그러신다. 매해 해왔던 겨울 김장김치조차 이젠 버거워 하시는 걸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이라는 건 머리 떨어져 있을때와 가까이 있을 때가 그렇게 차이가 있는것 같다. 어릴 땐 몰랐던 어른들의 삶이 이젠 자꾸만 내 앞에 놓여지게 되고, 소중한 이들이 기억을 잃어버리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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