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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오사나이 씨, 나를 잘 봐요. 당신이 혼란스러우리라는 건 나도 알아요. 그래도 오늘 도쿄까지 와 준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다음 스스로 결정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벌벌 떨어요?"
"루리" 어머니가 딸을 나무라고 오사나이를 향해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건방진 소릴 해서." (p12)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에서 이 문장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떤 의미였을까, 영특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똑똑한 아이 7살된 루리는 50대 초로의 오사나이 쓰요시씨에게 건네는 또다른 위로였다. 그건 아이의 영특함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시간과 공간, 이 두개의 씨줄과 날줄이 겹쳐지는 곳에서 서로가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그자체였다.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사노 쇼코가 <달의 영휴>를 한번 더 읽어보라고 한 이유가 이 문장 때문은 아닐런지. 전생과 현생이 오가는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소설 속에서 사랑은 그렇게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누군가의 삶이 또다른 누군가의 삶과 교차되도,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감춰진 비밀들과 마주하게 된다.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미스미와 유부녀 마사키 루리의 사귐 속에 감춰진 비밀들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마주해야만 알 수 있다는 걸 독자는 그런 놓치고,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어우러져 우리 삶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야. 어떻게 생각해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쓰요시 씨한테는 현실이 안 보일지 몰라도 우리가 이 현실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루리를 위해서도..." (p53)
쓰요시에게 놓여진 현실은 스스로 감내할 수도 이겨 낼 수도 없는 현실이다.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은 눈앞에 보여지며, 오감을 통해 인식한다. 오사나기와 고즈에 앞에 놓여진 현실, 우리의 인식은 하나의 현실을 비추고 있다. 오사나기와 고즈에 사이에 놓여진 루리는 그렇게 전생과 현생을 오가면서 소설에서 사랑의 실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아이의 스쳐지나가는 말들이 시간을 지나면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때 우리 앞에 놓여지는 것은 후회와 아픔이다.
"아키히코 군, 내 이름 루리는 보석이라는 뜻이야. 파란 보석"
"나는 반인반마 내리는 것은 산호 비와 푸른 루리 비" (p149)
한 사람 앞에 놓여진 삶과 죽음은 우리 앞에 놓여진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삶과 죽음을 오가게 된다. 죽음을 마주할 때 우리가 보여주는 자세는 다시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남자 앞에 놓여진 '루리' 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 '루리'는 달이 그믕달에서 보름달로 서서히 이동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환되고 있으며, 사노 요코는 달의 모양의 변화됨을 우리에게 놓여진 삶과 죽음과 교차되어지도록 만든다. 우리의 삶이 달의 순환처럼 예측되질 수 있다면, 삶은 죽음으로 바뀔 것이고, 죽음은 다시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 또한 바뀔 수 있으며, 삶에 대해 지나치게 고통스러워 하고, 슬퍼하지 않는다.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유언에 의미를 두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