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의 죽음 -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2
기세호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할아버지도 집에서 돌아가셨고,친할머니도 집에서 돌아가셨다. 엄밀히 따지면 큰집에서 돌아가신 거였다. 이런 모습에 대해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먼가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보여지지만, 그 시간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 요양 병원이 없었고,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것 또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삶과 멀어진다는 게 당연하던 그 시절, 삶과 죽음은 교차되었으며, 내가 머물러 있는 곳과 내가 죽을 묘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전통적인 사회의 근간에는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는 현실이 포함되었으며, 마음에서 큰 어른이 세상을 떠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슬퍼하고 아파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농촌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도시로 옮겨가는 현상 속에서 시골에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옮기게 된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삶은 도시이지만 죽음은 고향이 있는 곳에 장지를 두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세태의 변화과정을 마주하게 되고, 삶과 죽음이 물리적인 거리로 보자면 상당히 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6년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 속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과 시골 오일장의 모습은 이제 과거의 모습이 되었으며, 흐릿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은 영화나 미디어에서도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영화나 미디어느 죽음에 대한 성찰이 그려지지 않고, 숨기고 배척하고 있다. 때로는 죽음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은유적으로 편집한다. 


저자는 이런 우리의 모습들, 삶과 죽음이 가까웠던 과거의 모습과 삶과 죽음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고 진단하고 있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면서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은 분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죽음 이후에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서울이 아닌 서울의 경계선이나 서울의 외곽 또는 지방의 변두리로 향하게 된다. 그것은 묘지를 쓰거나 화장을 하가나 마찬가지이다. 묘지를 쓰는게 당연했던 과거의 우리의 모습들은 현대에 들어서 묘지를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묘지를 쓰지 않고 화장을 하는 모습은 점점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하고 삶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일회용적인 삶이 우리의 가치관과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도로와 철도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면서 묘지가 있어야 하는 곳은 도시에서 더 멀어져 간다. 유교적 가치관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우리가 우선 하는 것은 경제적 이해였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유교적 가치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죽음에 관한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삶과 죽음의 물리적으로 멀어짐이 본질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였다. 도시에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이 멀어지면서 우리는 생각이 변하고 있으며, 행동도 바뀌고 있다. 사색하지 않고, 추모하지 않으며, 반성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불안의 실체가 되어간다. 죽음에 대해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면서 자산의 삶이 죽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놓치고 살아간다. 프랑스 파리에서 보여주는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이제 서울에선 볼 수 없다. 묘지를 들어내고 그곳에 새 아파트를 심는 우리의 현주소, 도시가 촘촘해짐으로서 사람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두개의 저울 위에 놓여진 인간의 물질 추구와 정신의 저울추가 흔들리고 있다. 저자는 그런 우리의 세태를 이 책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방식은 어떠한가.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용산 참사 희생자 추모비는 그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세워졌다. 참사가 벌어졌던 바로 그 건물은 철거된지 오래고 한동안은 주차장으로 쓰였다. 지금은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dj 부단히 과거의 기억을 떨쳐 버리려 애쓰고 있다. 유가족과 일부 시민들이 때때로 시위를 하고 추모의 뜻을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그 자리를 찾지만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는 어렵다.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