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태재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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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는 무얼까, 책을 쓰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인간이 만든 책은 우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현재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책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마주한 경험이나 생각, 진리를 책 속에 집어 넣고,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때로는 비판하고, 때로는 검증해 나간다. 책은 누군가의 관심이 없다면 그건 책의 효용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여진 책은 그건 책이 아닌 거다.   


책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책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를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작가 태재는 3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작가로 시작하게 된다. 광고를 전공하고, 광고와 마케팅 일을 하였던 저자는 이제 책쓰기를 시작하였다. 고향에서 올라와 독립을 하면서 살아왔던 지난날의 추억과 경험들, 그 안에는 저자만의 생각이 숨쉬고 있다. 생각과 가치관은 누군가의 관심을 가지게 되고,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고, 때로는 이질감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온전한 솔직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나의 삶과 일치할 때면 저자의 얼굴을 알지 못하더라도 친밀감을 느끼고, 미소짓게 된다.


점점 "그러면 안 되지 않아?"라는 질문이 없어진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예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연애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저 사람은 저렇게 하나보다' 싶다 (P10)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그러면 안 되지 않아' 에는 자신의 생각이 드러난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생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앞에 보여지는 무언가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되지 않아?'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변화를 추구하려는 나의 욕망이 숨어 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반면 '저 사람은 저렇게 하나보다'는 무관심이며 시큰둥함이다. '아니오'가 '예스'로 바뀌는 순간이다. 불확실함을 멀리하고, 도전하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나 자신이 조금씩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스물여덟이 되었다. 아무 감흥도 절망감도 없다. 전에 나이를 먹었을 때는 변화가 많은 시기여서 호들갑을 떨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런 나는 부정적인가. 다시 자신감을, 열정을 가지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청춘'이라는 말을 믿었던 나를 , 순진했던 나를 아직도 가여워하고 있나 보다. (P35)

청춘을 규정짓는 건 도전과 변화이다. 나이가 들어도 60이 되어도 도전과 변화를 즐긴다면 그 사람에게 '청춘'이라는 타이틀을 줄 수 있다. 반면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면 '청춘'이 가지는 순수함은 사라지고 만다. 10대 청소년은 모르기 때문에 도전하고, 부딪치고 때로는 유리처럼 깨졌다. 부딪치고 깨져도 누군가 도와주고 버팀목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보호막이 사라지고, 담장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걸 느끼게 되면, 청춘이라는 껍데기는 점점 더 벗겨지고, 조심스러운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미워질 땐 사력을 다해 미워할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몇몇의 미워했던 모습, 그것들의 합이다. 내가 하루에 만들 수 있는 몇 사람의 미소와 감탄, 그것이 나의 연료다 (P66)


책을 읽다가 과속방지턱을 지나듯 속도를 늦추게 되는 문장이 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읽었으면 하는 문장. 그에게 이 책을 권해볼까 고민한다. 아마도 너무나 무용한 일,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문장이 많다.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기억도 그리는 책 속의 한 문장 정도일지 모른다. 단지 그에게 속도를 내지 못했던 이유가 떠오를 뿐이다. (P173)


저자는 과속방지턱이라 표현한다. 독특한 표현이다. 나에게 속도를 늦추게 하는 문장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좋은 문장이 첫번째 경우이다.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 두번째 경우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은연중에 꺼낼 때 나는 세번째 과속방지턱과 마주하게 된다. 좋은 글은 필사하고픈 욕구가 꿈틀거린다. 그리고 책에는 주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그 순간 나보다 더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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