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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만 본다면 무언가 낭만 가득함을 느끼게 된다.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즐거움, 그 즐거움은 설레이게 만들고 자유로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도 처음엔 그럴 꺼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여행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평범한 여행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보편적인 여행책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작가 안드라 왓킨스는 자신이 쓴 소설 속 주인공이자 미국의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가 지나온 길을 따라가 보고 싶었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 444마일이나 되는 긴 거리, 700km 가 넘는 그 거리를 34일동안 안드라 왓킨스는 걸어가게 된다.
안드라 왓킨스의 새로운 도전에는 지원자가 필요했다. 남편은 5주동안 휴가를 낼 수 없었기에 남편 대신 80이 된 아빠를 선택하게 된다. 시간이 여유롭고 자신에게 든든한 존재였던 아빠, 그렇지만 아빠는 100km 가 넘는 거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숨막히는 5주간의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다.두 사람의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 대해 이애하고 알아가는 과정, 추억을 쌓아가는 그 흔적들이 기록되고 있다.
한번만 더 프라이드치킨 소리를 하시면요, 그놈의 치킨을 아빠 목구멍에 쑤셔 넣어버릴 거에요." 아빠는 욱하는 내 성질을 좌지 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반응을 보일 때마다 아빠는 큰 소리로 웃었다.
"좋아.그럼 우리는 이제 가 보마." (p67)
착각이란 그런 거다. 내가 잘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때, 그걸 찾아내는 재미가 존재한다. 아빠와 딸 사이에 교차되는 인생의 시간들, 딸의 도전을 바라보는 아빠의 그 마음 속에 색다른 감정들이 묻어난다. 어쩌면 아빠는 딸의 욱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찾아낸 건 아닐런지, 자신의 잊고 지내건 그 감정이 하나 둘 생각 나게 된다.
그가 계속 나아간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걷고 있을까? (p131)
걸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물어 보고 또 물어봤을 것이다. 하루 24km 의 거리를 걷는 건 처음은 어렵지 않다. 일주일은 체력이 고갈되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체력적인 고갈이 나타나고, 부상이 찾아오는 그 순간이 나타날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포기할 것인가, 갈것인가 갈림길에 놓여지게 된다.그런 거다.처음의 목적 따위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간다는 건, 안드라 왓킨스는 자신의 왜 걷고 있는지 처음의 목표조차 잃어 버린채 흐느적 흐느적 거리게 된다.
나는 가끔 여자들의 세상에 뚝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바라 보며 궁금했다. 내가 두 사람 곁에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누구야. 어머니와 누나들과 여동생레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던 남자가 아닌가. 다들 남편이 생겼을 때조차 나는 그들 세상의 중심이었단 말이지. 이제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땅에 묻은 남자가 왰다. 외부인, 따돌림을 받는 사람, 자기 집에서조차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 이거야.(p171)
안드라의 아빠의 어린 시절은 그랬다. 남자로서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지난날의 기억들, 하지만 안드라의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아빠의 인생은 바뀌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집에서 조차 존재감을 잃게 된다. 외동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느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한다. 살아갈 이유조차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온 지난날, 딸과 함께 한 5주간의 시간은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들을 상기 시키는 시간이 된다. 딸의 투정조차 아빠에게 있어서 소중한 기억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빠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거리감, 딸이 모르는 아빠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안드라 왓킨스를 바라보는 아빠의 존재 가치, 아빠를 바라보는 안드라 왓킨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들, 착각하고 지내왔던 것들이 함께 지내는 5주간의 시간동안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