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좋은 날 - 농부라고 소문난 화가의 슬로 퀵퀵 농촌 라이프
강석문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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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저자가 머물러 있는 터전 풍기라는 곳이 내가 사는 곳에서 10km 가 채 되지 않은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풍기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날씨가 다르다. 이유없이 바람이 불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쌓이는 곳이다. 예전에 이 지역을 지나가다 연예인들의 차량이 과속하다 대형사고를 당한 이유도 소백산에서 불어오는 새찬 바람 때문이다. 책에는 그런 이야기들 하나하나 저자의 경험이 나오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공감이 있고 이해가 간다. 풍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영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책에 담겨져 있다. 


풍기장날이다. 더 늦기 전에 토마토와 고추 모종을 사서 심으려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p11)

강석문씨는 화가이다. 그리고 농사도 짓는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계시는 구순이 넘은 아버지 밑에서 평일에는 같이 살아간다. 20대 후반에 왜 고향으로 냐려왔는걸까,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구순 아버지 혼자 농사짓기엔 힘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10마지기 이상 되는 밭을 아버지 혼자 짓게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에는 풍기 장날이 나오는데, 풍기장날은 3일, 8일에 선다. 그때가 되면 풍기역 앞에 있는 시장에 장돌뱅이가 모이고, 시골 할매, 할배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난 농사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농사꾼인 아버지의 졸병이다. (p29)

저자의 고향은 풍기다. 그렇지만 삶의 터전은 서울에 있다. 본업은 화가이며, 아버지는 사과 농사를 짓는다. 풍기라는 독특한 지형은 사과농사를 짓기에 최적지이며, 풍기는 인삼 주산지이기도 했다. 13마지기 4000평의 밭에서, 정작 저자가 농사를 짓는 공간은 30평이 채 되지 않는 곳이며, 농사 짓는게 아니라 농사 실험(?)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버지 혼자서 일할 수 없는 것들, 힘쓰는 일은 강석문씨께서 했을 듯 싶다. 


세상에 공짜로 먹는 건 하나도 없다. 내년 농사를 위해 경운기에 똥거름을 싣고 한숨쉰다. 똥 고생을 해야 행복한 그림처럼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래도 봄날 매화꽃 향기 맡을 기쁨에 오늘도 열심히 삽질해야겠다. (p36)

나에게 후투티는 그냥 새가 아닌 굉장히 특별한 새이다. 생김새가 매우 특이한 것도 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날 후투티 한 마리가 홀연히 내 주위를 맴돌다 옥상위에서 10여분 같이 운 것도 신기했고..(p42)

그렇다. 시골에는 간간히 여름 철새 후투티가 보인다. 저자는 후투티를 보면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고 있다. 돌아가신 날 봤던 후투티는 엄마의 분신이 아닐런지, 제삿날이면 그렇게 후투티는 집에 머물다 사라진다. 후투티는 저자에게 있어서 특별한 새이며, 의미 있고 소중한 새였다. 그리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야야! 마늘밭에 똥거름 나르자."
"아이쿠야! 할일 드럽게 많네!" 
옷을 갈아입고 경운기에 퇴비들을 한 삽 한 삽 올려 싣는다. (p124)

"야야"는 풍기 사투리며, 영주 사투리다. 동네 할매 할배들이 자주 쓴다. 정겨운 사투리를 무나로 옮겨놓으니 느낌이 새롭다. 농촌에선 뭐 하나라도 버릴 게 없다. 소를 키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의 거름이 바로 퇴비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걸 똥거름이라 부르고 있으며, 똥거름 나르는 일은 가을 추수가 끝나는 가을 무렵부터 시작된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고생이 끝난다는 것 웃기는 소리였다. 고생의 끝은 고생의 시작이 된다. 


책에는 저자의 다양한 인생 스펙트럼이 등장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딱지와 구슬을 게임을 통해 다 땃으며, 딱지와 구슬은 3000개가 넘었다. 그땐 구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걸 모두 교회에 가서 다시 나눠 주게 된다.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딱지,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생기는 에피소드가 눈물겹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애틋함이 뭇어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을 부쳐주던 어머니는 이제 없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어머니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저자의 삶 속에 묻어나 있으며, 행복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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