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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다오스타
정선엽 지음 / 노르웨이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은 그 역사의 배경지식을 알고 있으면, 어느정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선의 사극드라마를 볼 때 그 드라마의 시대배경이나, 그 당시 어떤 왕이 집권했는지, 더 나아가 그때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함께 알고 있으면 소설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나에게 효용가치가 있다.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시오노나나미가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고 이 소설을 읽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비야 다오스타>가 중세 유럽에서 일어난 십자군 원정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세기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던 셀주크 투르크는 크리스트교인을 탄압하였도, 비잔티움 재국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국운을 자우하게 되는 법, 셀주크 투르크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비잔티움 제국은 자신이 의도했던 위대한 일을 하고자 했다. 왕이라면 누구나 꿈꾸던 대업,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했으며, 그것은 한 국가의 국민에게 명분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1차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십자군 창설 되기 10년전 AD 1085년이 그 시작이다.
책제목이면서 소설의 주인공 비야 다오스타,그의 아버지는 사피에르 다오스타였으며, 아오스타출신이다. 사제가 되기 전 비야와 소피아를 낳았던 사피에르 다오스타는 아이의 출산과 결혼에 대해 숨기면서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중세 교회법은 사피에르의 비밀을 용납하지 않았고, 사피에르는 교회법에 따라 처벌 받게 된다. 그로 인해 두 아이와 떨어져야 했던 사피에르 ,비야와 소피아는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되고, 십자군 원정에 떠나는 십자군의 일원인 성전 기사단이 되어야 했다. 전쟁이 시작되는 가운데 비야는 스스로에게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이며, 명분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엄숙한 가치인 사랑이 전쟁과는 무관하였기 때문이며, 교황과 황제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 이 두가지에서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저자의 세번째 소설이지만 , 실제로는 데뷔소설이며, 두개의 종교가 충돌하는 그 과정이 그려진다. 종교가 가진 의미와 전쟁이 가진 의미 , 전쟁이란 권력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세기게 한다.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 우리에게 놓여진 역사의 대부분은 종교와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전쟁의 명분을 윅대함에서 찾고 있으며, 그 위대함이 그들의 권력의 속성을 감추고 있다. 사람이 죽어가고 사라지는 그것은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외면당한다. 자가는 비야 다오스타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으며, 중세 유럽 사회의 모습을 심도있게 그려나간다. 특히 이 소설은 400페이지의 두꺼운 분량임에도 물구하고, 지루함이나 어려운 문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 그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과정이 힘들어진다. 그것이 역사소설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렇게 다들 열만 내지 말고, 차분하게 무엇이 제국에 유리한 결과를 낳을지 따져보세요.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국만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하인리히 4세까지 가세한 그들과 힘을 겨룬다면 자칫 제국을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그들에게 싸움을 걸면 이 땅을 오히려 갖다 바치는 꼴이 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게 최선입니다. 십자군에는 여러 나라가 뒤섞여 있음을 이용해야 합니다.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서로간에 눈치를 보느라고, 함부러 이곳을 차지하려 들 수 없을 것입니다." (p117)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이 그 작은 땅을 차지하려고 수많은 투르크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는 게 선뜻 믿겨지지 않아서 그래.""지난번 클레르몽에서 교황 성하의 말씀을 못들었어? 그들은 어리석고 무지해서 절벽 아래로 몸을 내던지는, 눈이 어두운 염소무리라고 말씀하셨어. 악한 영에 붙잡힌 불쌍한 자들이란 말이야. 그들을 바로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야말로 주님 앞에서 커다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셨어. 그래서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고!"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