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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평점 :
언어란 무얼까, 하나의 언어는 또다른 언어로 온전히 변환되지 못한다. 그것은 언어가 가진 한계였으며, 슬픔이자 고통이다. 라틴 문학의 정수 세사르 바예호의 시상과 사유는 스페인어로 쓰여져 있으며, 우리 곁에 온전히 다가오게 되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필사하게 되는 세사르 바예흐의 문체와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게 되었으며, 누명,옥살이, 망명,그의 비극적인 삶과 고통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치유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유없는 희망의 메시지 보다 동질감을 느끼는 고통과 비극의 메시지는 그렇게 한 사람의 언어에서 또다른 언어로 이행되어진다.
그의 삶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페루 안데스에서 태어난 세사르 바예호는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형을 잃었고 어머니와 누나를 잃게 된다. 성장과정에서 마주하는 그의 삶은 죽음과 뗄레야 뗄수 없는 그런 삶에 놓여지게 된다. 더 나아가 억울한 누명을 써야 했던 그는 그렇게 그렇게 중남미 페루에서 역사적인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제국주의에 대해서, 지식인으로 살아간 그는 고통이 무엇인지 , 살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시간의 단절, 공간의 단절은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연결짓게 되고, 그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과 교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울, 이제 네 달콤한 주둥이를 빼라.
반들반들한 내 밀로 굶주린 배를 채우면 안 돼.
우울 이제 그만! 내 파란 거머리가
뿜어내는 피를 제 비수(匕首)들이 얼마나 마셔대는지! (p32)
우울의 근원은 내 안에 있었고, 그것은 나의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우울함을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낼 수 없음을 세사르는 그렇게 자신의 고통의 실체를 드러내고자한다. 나의 아픔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보다 나 자신이 먼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자신의 상처는 남이 알아준다고 해결되지 않음을 , 내가 나의 상처를 알아주여야만 그것이 치유됨을 알게 된다. 아픔을 느끼지만, 그것에 침전되어 있는 세사르의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 리마에 비가 내린다.
내가 배신을 저지른 잔인한 동굴.
"그러지 마" 라는 그녀 목소리보다 더 무거웠던
그녀 양귀비 위에 있던 내 얼음 덩어리. (p45)
세사르의 시에는 비가 많이 나타난다. 우울함과 비참함은 그렇게 '비'라는 눈에 보여지는 하나의 객체에 의해서 세사르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세사르,그에게 얹어진 얼음 덩어리는 그를 더욱 더 차갑게 만들어 버리고, 우울함은 극에 달하게 된다.
아게디타, 나티바, 미겔,
거기로 가면 안돼, 조금 전에
조용한 닭장 쪽으로
괴로운 연옥의 영혼들이
속죄를 구하며 지나갔어.
닭들이 이제 막 잠들려는 찬이었는데,
놀라서들 난리가 난 거 봐.
그냥 여기에 있는게 낫겠어.
어머니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거든. (p108)
막내로 태어난 세사르는 그렇게 누나와 형에 대한 기억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억은 세사르가 살아갈 수 있는 근원이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고통과 비참함의 연속됨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와 헤어짐에 대해서 기억하고 되세김질 하게 된다. 세사르의 기억의 되새김질은 바로 우리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그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 되어 투영되며, 그의 슬픔은 온전히 나의 슬픔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그의 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이유없는 고통과 이유없는 우울감, 그것은 아무 이유없이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