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날들에 안부를
하람 지음 / 꿈의지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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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나의 마음이 깊은 침전으로 인해 나 자신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당황스럽고 엉켜버린 나의 일상, 그 순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허우적 거리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은 더욱 더 나를 옥죄고 있으며, 스스로 또다른 기억과 상처들을 끌어앉은 채 살아갈 때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지만, 그 순간 만큼은 사람이라는 나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는 성현의 가르침조차 망각하게 되고, 나 스스로 떠도는 부유물이 되어 간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비추고 있으며, "나를  만나는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삶과 죽음 그 중간에 놓여져 있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네가 찾는 행복은 낯선 도시의 길 위에 , 그 사람 곁에, 편안한 사람들의 웃음 소리 속에 있어." 내가 지나온 날들이 그렇게 말해줬다. (p10)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떠나는 사람이 가여워 울까, 남겨지는 게 두려워 울까, 두고 온 것들이 애틋해 울까. 그러나 갠지스강의 사람들은 울지 않는대. 죽음은 영원한 자유이거나 평화라고 믿기 때문일까.(p24)

삶이란 뭘까? 죽음이란 뭘까? 정답 없는 그 질문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모른 채 울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나는 왜 우는 걸까 고민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지금 살아있어서 우는 걸까, 아니면 죽은 사람이 안타까워서 우는 걸까, 어쩌면 나의 눈물은 이기적인 나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런지,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눈물짓게 되고, 나 또한 똑같은 운명을 가질 수 밖에 없기에 눈물짓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태어난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는 그 진리에 우리는 그렇게 삶에 치이고 , 치여진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p62)


보이지 않음에 대한 생각의 편린들. 어릴 땐 어려서 몰랐고 , 어른이 되어선 어른이라서 모르는게 있었다. 노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항상 우리는 안다는 그 하나의 추상적인 단어에 대해 한 박자 타이밍이 느리며 살아진다. 소중한 것을 알게 될 땐 그 소중한 것이 내 곁에 없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고 집착하게 된다. 누군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삶을 마감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위치였는지, 어떤 존재였는지, 그 때는 알지 못하고 살아진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 아닐런지. 그래서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후회'의 꼬리표는 영원히 남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나 스스로 후회를 반성으로 바꾸면서 자기합리화 하게 된다.


전철을 탔다. 옆에 앉아 조는 이에게 고약한 술 냄새가 풍겼다. 맥없이 고단했던 밤, 거너편 자리로 몸을 옮기는 쉬운 일조차 어쩐지 힘에 부쳤다. 기차가 스무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지독한 냄새를 그대로 참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그 작은 불편이 귀찮아서 애꿎은 미간만 잔뜩 찌푸린 채로.
나는 가끔 작은 불편들을 외면했었다.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는 일, 용기 내 화해를 청하는 일,부끄러운 내 모습을 꺼내 보이는 일도, 불편한 찰나를 피해 숨거나 도망치다 내내 껄끄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라 잠들기 전까지 코 끝에 고약한 냄새가 아른 거렸다. (p96)


선택하기와 결정하기.선택과 결정의 첫 번째 기준은 대체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이익이 안되는지였다. 하지만 나에게 불편한지 불편하지 않은지, 그것이 선택과 결정의 또다른 기준이 될 때도 있다. 나에게 큰 이익이 되더라도, 불편하면 회피하고 미루는 나의 마음,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기억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면서 이익이 되지 않은 일에 대해 외면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편해서였다. 나의 성격과 성향, 나의 용기없음조차 불편한 이유였다. 누군가 만나지 않은 건 그 사람이 나에게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닌,미워해서가 아닌 불편해서였다. 그런 나의 자화상은 나 뿐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위로라는 건 그렇게 동질감에서 시작된다. 나의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부딪침이 없으려면 내 앞에 놓여진 불편함을 먼저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앞만 보고 달렸다. 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지 모른채 앞만 보고 달리면, 무언가 얻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지 않은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였다. 쉬어가면 되는 일을 그 쉼표를 잘못 찍음으로서 나 스스로 후회하게 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그 말 속에는 신중함, 그 언저리에는 후회가 감춰져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후회가 많아진다는 것이며, 후회의 씨앗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나 스스로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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