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 서민의 삶을 담은 화가 예술가들이 사는 마을 14
공주형 지음, 윤종필 미술놀이 / 다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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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쟁이. 이 단어는 과거 우리가 예술가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 스포츠를 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할아버지,할마니는 굶어죽기 딱좋은 직업이라고 했다. 박수근 화백이 살았던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술을 경시하고 사자를 좋아하느 사회 풍토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은 박수근 화백의 운명을 흔들어 놓았고, 화가의 꿈을 찾아 나가게 된다. 다양한 화풍을 모방하고, 스스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던 가운데, 평면 위에 재료와 재질을 활용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 마티에르를 추구하게 된다. 거칠면서 한국적인 정서가 녹여져 있는 그의 그림 속에서 한국의 서민들의 삶이 그려진다. 





우리에게 알려진 두개의 그림, <노인과 소녀>,<빨래터>이다.과거엔 당연했던 우리의 기억 속 한 장면, 할아버지와 소녀는 한자리에 있었고, 서로 거리의 가까움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와 소녀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고 어색해져 간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 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단상이 그려진다. <빨래터>도 마찬가지이다. 시골 개울가에 냇가에 아낙네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의 기억들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개울가에 고여있는 물은 비가 오는 그 순간에 잠시 보여질 뿐, 항상 언제 어디서나 물이 보이지 않는 연탄재 풀풀 날리는 개울을 볼 수 밖에 없다. 시골 아낙네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어서 빨래터가 아닌 편리한 세탁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그 정겨운 모습은 점점 더 기억속에 잊혀지게 되며,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를 통해 기억할 뿐이다.





박수근 화백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 소중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보여지는 우리의 기억들이 잊혀짐에 대해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속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처음이나 그 이후 대중들에게, 서양인들에게 알려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적인 화풍을 추구하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박수근화백의 그림 속에서의 거침은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그래서 어색하지 않고, 거칠지만 바로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다.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미술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왜일까 왜였을까. 일주일에 두시간 주어지는 미술 시간에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미술시간이 궁금해진다. 철처히 공부를 위한 미술시간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닌 시간을 때우는 수업시간이었고, 내신을 올리기 위한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외우라는 것을 외워나갔다. 미술시간이나 음악 시간은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미술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체험적인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느끼게 된다. 미술 시간을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시간, 박수근 화백의 미술 세계를 이해하려면 머리가 아닌 손으로 느끼게 될 때, 이 책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스스로 모방할 수 있는 체험적인 미술에 대해서, 역할을 도와주고 있다.서양식 미술 기법 마티에르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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