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강정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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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배설, 이 책을 읽으면서 떠나지 않았던 개념이었다. 이 책은 처음 책 제목에서 느꼈던 생각, 지극히 감상적이면서, 자신의 삶을 담아낼 거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마흔을 지나 오십을 바라보는 저자의 나이 속에는 그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있었다. 저자의 생각은 저자의 언어를 통해 기록되어지면, 그 언어는 저자 '강정'의 또다른 표상이 되어진다. 산문이면서 상당히 난해하며, 때로는 책에 담겨진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구체화되지 않지만 저자의 자아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지극히 시대적인 저항의식을 엿보게 된다. 사변적이면서 추상적인 언어들이 등장하며, 그 언어들 사이에 저자의 또다른 자아 강정이 존재하게 된다. 책 제목이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낸다기 보다 책의 표지가 이 책을 성격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기억들,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20대의 삶을 보냈던 저자의 삶 속에 그의 이름 강정의 또다른 이름이 존재한다. 어른들이 지어준 외자 정은 바를 정(正) 자였다. 자신의 한자 속에 감춰진 의미는 저자의 삶과 일치 하지 않았고 때로는 모순되어짐 그 자체이다. 그건 저자의 삶에 있어서 상극이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 이름은 '기림(奇林)' 이며, '기이한 숲'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름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자아는 바로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외모도 자신의 자아였지만,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외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름을 기억할 때 그의 외모 뿐 아니라 그에게 불렀던 또다른 기억들이 마른 우물 밑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그렇게 그 사람의 형상이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울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자신의 어릴 적 잃어버린 자아이다. 그 자아는  나이가 들어감으로서 그 '울음'이라는 감정이 흐려지고 감춰져 버린다. 슬퍼하면서 그 슬픔을 감춰야 하는 현실, 그것이 응축되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추상적이지만, 자신만의 경험이 농축되어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정리되어 있는 언어와 정리되어 있는 규칙에 따라 서술되어짐을 거부한다. 우리의 삶은 저자의 산문 속에 나타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각자 서로 다른 것들이 내 기억 속에 엉켜 있으면서, 그것을 정리 정돈하는 것에 대해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왜곡된 기억들은 재포장되어지고 그 포장된 언어들이 자신인 것처럼, 채워 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것이 보여지지 않으며 날 것 그대로의 강정의 삶과 생각, 가치관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코끼리가 날아간다.
누구는 그것을 비행기라 하고 누구는 고래라 하지만,
아무도 코끼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코끼리라고 말하는 순간,
하늘이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낙서 (p196)


책에는 저자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눈길이 갔던 건 바로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이며, 영화 엘리펀트'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엘리펀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코끼리가 아니다. 감독 구스 반 산트가 찍은 영화 '엘리펀트'이며, 그 영화는 미국에서 일어난 컬럼바인 총기 사건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영화에서 코끼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코끼리는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또다른 개념과 단어들로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건 우리가 '코끼리'라고 부르는 그 순간 평온한 일상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의 개념, 누군가 행하는 그 행동이 최악의 상황을 야기하는 것 이 너머에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에 대한 인과 관계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드러난다 해도, 사건의 피해자가 된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걸 말하고 있다.


책에는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해서 말한다.락의 대부 가수 한대수 씨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 음악 속에 감춰진 저항정신이 무언지 저자의 사유가 엿보여진다. 지금 힙합을 통해 요즘 가수들이 말하는 노래엔 과거의 그런 저항의식이 사라지고 없음을 저자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으며, 그들은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불평과 불만 표출, 그것을 그러내는 또다른 배설을 저항의식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또한 우리 삶에 주어진 죽음에 대한 가치들, 누군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기억속에 채워지게 되고, 나의 자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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