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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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자, 그들을 연결해주는 이는 무녀의 삶이다., 산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무녀는 존재했으며, 조선시대 비과학적인 삶 속에서 그들은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다. 역병이 창궐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질 무렵 백성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나라가 아닌, 왕이나 사대부가 아닌 무녀와 같은 그들의 삶 속에 깃들여져 있는 누군가였다. 죽은 이의 원혼을 달래주던 무녀는 그들의 삶에 필요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사대부들은 무녀들을 외면하면서도 자신 앞에 놓여진 불행한 운명이 닥칠 때 그들이 손을 잡는 무녀였다. 숙종 시대 사대부들의 권력 다툼에서 불결하다 낙인 찍혀 버린 무녀들은 한양 도성에서 쫒겨났으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정미경씨의 소설 <큰비>는 바로 우리 역사 속에 혼돈의 대표적인 역사,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권력이 현존했던 숙종 임금때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소설은 무진년 (1668년 ) 7월 13일 새벽을 향하고 있다.


부처의 세상이 지워지고 미륵의 세상이 돌아온다.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미륵의 세상이다. 하지만 불교와 유교를 숭상하는 사대부들에게 미륵의 세상은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에서 '큰비'란 권력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세대 교체이며, 약한자와 강한 자의 신분이 역전되는 것이기도 했다. 권력이 모여있는 한양 도성에 검은 큰비가 내리면, 그들의 혼탁함과 비열함이 씻겨져 내리게 되고, 백성들이 잘사는 태평 성대의 삶이 열리게 된다. 여기서 '큰비'는 가난한 백성의 욕망이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원향과 여환은 성혼은 입으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또다른 힘을 가진 실체였다. 하지만 그 힘의 실체는 누군가에겐 또다른 두려움이다. 


이 소설은 역사속 이야기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고 있다 숙종 임금때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들이 도성에 입성해 미륵의 세상을 열고자 했다는 역모 사건은 작가의 새로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 역사 속에 존재하는 대우경탕설은 한양 도성에 큰 비가 내려 세상이 기울어진다는 의미이며, 그것이 역모와 반란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속 한줄에서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야 했으며, 무녀에 관한 사료,샤머니즘에 대한 사료들을 모으게 되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녀들과 원형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하랑, 하랑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던 원형이 어머니의 죽음을 소담부인에게 알고 나서 자신이 가진 신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 과정이 펼쳐지게 된다.


과학에 의존하는 우리 삶에서 무녀의 존재는 무당으로 바뀌었으며, 때로는 영화 속에서 박수무당처럼 희화화 되거나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재평가 된다. 여기서 무녀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삶에 동떨어져 있으며, 때로는 낯설고 어색하다. 소설 속에 원향과 여환의 몸이 섞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미륵의 세상을 열기 위한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나에게 있어서 이 소설은 어려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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