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 왕들의 살아 있는 역사 고전맛집 3
김종렬 지음, 노준구 그림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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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날마다 겪은 일이나 생각, 감정을 적어가는 개인의 기록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매일 매일 써내려간 나의 기록이 하나로 묶여지면 하나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다. '승정원 일기'는 조선의 왕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시대엔 승정원이라는  별도의 관청을 두었으며 왕을 보필하였다. 24시간 왕의 곁에 머물며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 승정원일기이며, 조선초에서~1910년까지의 기록이 모여 하나의 '승정원일기'라는 사료가 된다. 승정원 일기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과거의 기록이 불타버렸으며, 1623년 이후 1894년 갑오개혁 전까지 270년간의 기록만 현존한다.


조선의 가장 큰 특징은 기록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기록 유산으로는 승정원 일기 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해례본, 동의보감, 일성록, 난중일기, 유교책판, 조선왕조 의궤가 있다. 여덟가지 기록 유산은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승정원 일기와 조선왕조 실록은 왕의 기록이다. 차이점은 승정원은 왕이 살아있을 적에 쓰여졌으며, 조선왕조 실록은 왕의 사후에 쓰여졌다. 승정원일기는 왕이 자신의 기록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조선왕조 실록은 볼 수 없다. 


왕의 24시간을 기록하는 책무를 가진 승정원은 왕이 머무는 곳, 창덕궁에 위치하고 있으며, 궁궐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매일 왕의 곁에서 왕과 함께 하기에 승정원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일을 한다. 책에는 승정원의 업무로 기록 뿐 아니라 임금의 명을 다시 되돌리는 역활을 하고 있다. 그걸 '작환'이라 부른다.


승정원의 업무를 보면서 <승정원 일기>를 기록한 사람들을 주서라고 일컬는다. 조선왕조 실록을 기록한 이를 사관이라 부르는 것처럼 주서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책무를 가지고 있다. 임금의 말과 국정의 모든 일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 주서의 직급은 정 7급으로 낮은 자리이지만 상당히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주서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사관과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승정원 일기의 기록 방식이 나오고 있다. 승정원 일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지며, 먼저 날짜와 날씨가 등장한다. 그 다음에 쓰여진 것이 승정원 업무를 맡았던 승지와 주서의 이름이 쓰여진 '좌목'이 등장하며, 임금이 그날 머물렀던 장소, 국왕과 왕비, 대비와 세자의 건강을 진찰한 기록, 임금이 하루 동안 살핀 나랏일이 순서대로 등장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승정원 일기는 왕이 직접 볼 수 있는 기록이기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영조가 재임하던 시절 임오년에 있었던 기록이다. 세도세자가 뒤주에 죽어야 했던 역사적인 기록은 승정원 일기에 기록되었지만 영조의 명에 따라 지워졌다.



승정원 일기에서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날씨이다. 매일매일의 날씨가 승정원 일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측우기를 이용한 강우량도 꼼꼼하게 기록되어졌다. 측우기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서졌으며, 영조에 의해 측우기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날씨와 강우량이 중요했던 건 바로 조선이 농경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실록은 모두 번역되어서 우리는 그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 승정원 일기는 방대한 자료로 인해서 모두 번역되지 못한 상태이다. 50년 이후에나 승정원 일기 번역이 완성된다고 하니 그 자료의 양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번역기술이 완성되면, 누구나 쉽게 승정원 일기를 인터넷으로 열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조선이 남겨놓은 기록유산으로 인해 우리는 조선시대에서 일어난 기록과 흔적들을 알 수 있으며, 선조가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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