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는 조선의 처녀다 - 눈물로 쓴 정신대 위안부 이야기
다니엘 최 지음 / 행복우물 / 2016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부산 일본 총영사관에는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은 바로 일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그 사람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협상을 통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대한민국 국민은 분노하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친일파 황의원의 딸 정화와 그 사람은 별반 다를게 없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함으로서, 자의적으로 일본과 혐상하였던 것이다.


수희와 명희는 돌아와서 사흘을 몸살이 나서 누워 있었다. 무엇보다 명희는 오줌이 나오지 않아 온 몸이 퉁퉁 부어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수희는 사흘 만에 일어났지만 명희는 하루를 더 끙끙대며 앓아 누웠다. (p322)


소설 속 주인공 수희는 영암군 덕진면 시골 마을 최씨네 집 딸이었다. 소설 속에는 수희와 순임이, 분예가 등장하는데, 모두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게 된다. 일본군 순사에 의해서 조사할 게 있다는 명분으로 끌려간 소녀들은 그렇게 일본군의 사기 증진을 위해 강제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소녀들에게 물 한모금 주지 않고 굶겼으며, 그들의 잔인한 행동으로 인해 순순히 그들의 요구 조건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하루 80명 이상 의 군인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야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순임이는 만주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 던져 버렸고 수희는 스스로 견디면서 살아가야 했다.

일본은 꿈꾸고 있었다. 중일전쟁과 노일 전쟁 승리로 사기가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에게 만만치 않은 곳이다. 일본이 중일전쟁에 승리했지만, 중국을 수중에 넣은 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의 거점만 장악했을 뿐 50만 대군을 중국에 투입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작개석이 이끄는 군대는 일본군의 목적을 꺽어 놓기 충분했으며, 보급로를 확보하지 못한 일본군은 스스로 수세에 몰리는 지는 게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기가 꺽인 일본군에게 위안소는 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조선인 처녀는 그렇게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이용당했다.


일본은 중국과 조선만 유린 한 건 아니었다. 화란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그들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필리핀도 일본이 차지 하였다. 전쟁은 일본의 야육을 증폭했으며, 미국의 괌을 수중에 넣으려 했다. 진주만 공습은 그 시발점이었으며, 소설 속에서 일본이 B-29를 활용한 전쟁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수희와 함께 위안소에 끌려간 춘자,춘자의 오빠 춘식과 수희의 오빠 상필은 일본군 항공대대의 학도병으로 끌려갔으며, 그들이 원하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말았다.


위안소는 일본인이 전쟁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개설되었다면, 조선인 처녀가 일본배에 실려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들이 있었다. 소설 속 일본인 우찌다는 차포타우산 초입새 위안소를 배정받았으며, 조선인 처녀를 포함 21명의 처녀를 이용해 사업을 허고 있었다. 위안소는 우찌다를 바쁘게 만들었으며, 21명의 처녀는 자신이 1년동안 벌어도 얻을 수 없는 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일본군과 일본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위안부는 존재할 수 았었던 것이다. 우치다에게 짭짤한 돈을 벌어준 이는 안나 밤베르크라는 백인 처녀였으며, 일본 연대장은 시시 때때로 안나를 찾았다.


내선일체, 황국신민..일본이 전쟁을 하면서 내세웠던 기치이다. 그들은 이 두가지를 일본인과 조선인,중국인에게 주입시켰고 전쟁의 명분을 강화하였다. 죽음을 신성시한 그들의 행동은 결국 수희가 자신이 배운 총검술을 활용해 일본인 군인을 죽이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전쟁은 일본에게 불리해져 가고 있는 반면, 일본인이 잡아갔던 조선인 처녀는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서 얻게 된 매독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렇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신대 위안부의 민낯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섞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그것은 끝난게 아니었다. 조선이 해방되면서 사람들이 조선인 처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지 않았고, 수희는 세상사람들의 입과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산에 놓여진 편견은 그렇게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을 또다른 고통이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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