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히틀러를 우리는 잔인한 지도자라 부른다. 스탈린도 히틀러 못지 않은 잔인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유댕니을 죽음으로 몰았던 히틀러와 달리 스타린은 독재를 하면서 피의 대숙청을 벌이게 된다. 수백만이 희생된 가운데, 그 누구도 스탈린에게 대들지 못했던 제2차 세계대전, 그 시대를 오롯히 견뎌온 이가 있었다. 그는 드미트리 드미트리 예비치라 부르면서 쇼스타코비치라 부르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예술가로서 스타린 독재를 몸소 경험하면서, 스스로 죽음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1936년 스탈린이 있었던 그 자리에 새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올렸던 쇼스타코비치, 그러나 그 오페라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는 스탈린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 했으며,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투하쳅스키 대원수의 반역과 함께 그에게는 천재의 작곡가에서 비극의 작곡가로 추락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스탈린 독재 시대엔 두가지 부류가 존재하게 된다. 러시아인이거나 소비에트인이거나, 스탈린 체제에 반하는 인물은 러시아인이라 불리었고, 숙청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검열이 일상이 되어 버린 그 시대상, 스탈린의 말한마디는 소비에트 연방의 법이 되어 버렸으며, 쇼스타코비에게 좋은 찬사와 비평 일색이었던 언론은 1936년 새 오페라를 스탈린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비난을 얻게 되었으며, 언론은 그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아야 했다. 굴욕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하면서 독재자 스탈린이 좋아하는 것과 취향을 알아내 선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주변 예술가들이 숙청되어 소리없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는 감내하고 자신의 내면을 숨겨야 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스탈린의 눈밖에 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1936년 윤년은 다시 1948년 유녕이 되어 돌아왔으며, 1972년 다시 윤년이 되어 쇼스타코비치 앞에 그날이 찾아오게 된다.


참고 견디는 것, 소비에트의 독재자 스탈린은 죽고 말았다. 그 주변 인물들도 하나 둘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에트는 달라지지 않았고, 쇼스타코비치에게 또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권력이 새로운 권력으로 이향하되면서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했던 음악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추구했던 그 음악이, 스탈린 독재에서 벗어나면서 그는 대중들의 비난에 놓여질 수 밖에 없었으며, 숨어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은 감내하고 견뎌야 했으며, 쇼스카코비치는 그 시대의 표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죄를 지목하고, 되풀이해 말하고, 그 결과를 영원히 경고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음악이 아니라 혼돈' 은 학교 교과서가 되었고, 음악사에서 음악학교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p111)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은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가 낙관주의가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이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그들이 그에게 여러가지 방식과 표현으로, 음악관료들과 신문 사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 했던 대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였다. 용어상 또 하나의 모순이었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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