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박스 -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
마크 레빈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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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다. 인터넷 혁명은 들어봤어도, 컨테이너 혁명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컨테이너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100년전 전세계의 지형 변화가 지금처럼 바뀌게 된 그 과정 하나 하나 알 수 있다. 컨테이너 혁명이 물리적 공간내에서의 혁명이라면, 인터넷은 가상의 공간 내에서의 혁명이었다.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생각 났다. 일제 시대 대한민국에 놓였던 철도는 조선의 식량을 가져 가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 녹여있다. 특히 전라도에서 부산으로 지나가는 철로는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물건이 이동하느 하나의 경로였다. 항구에는 부두 노동자가 있었고, 그들은 물류의 이동이 원할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도 부두 노동자가 나오는데, 뉴욕항만청의 뉴욕항에서의 부두 노동자였다. 컨테이너가 있기 전 부두 노동자는 배에 실려있었던 물건들을 이동 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항구를 주변으로 숙박업이 늘어나고 , 철로가 발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배에서 실려있었던 컨테이너는 그렇게 한나라의 경제를 먹여 살리게 되었으며, 컨테이너는 운송비 가격을 낮추게 된다.


하지만 뉴욕항은 바뀌고 있었다. 말콤 맥린이라는 사람은 트럭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항에서 미국 전역으로 물건을 이동 시키는 운송 사업주였다. 그는 돈을 버는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커다란 배는 유조선이었고, 유조선을 활용해서, 컨테이너라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냈다. 커다란 네모난 상자 안에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 실려 잇었고, 트럭은 그것을 요긴하게 이동시키는 운송 도구였다. 하지만 컨테이너 막스가 뉴욕에 들어올 당시만 하여도 철도 노동자의 반발을 불러왔다. 철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하지만 그들은 한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컨테이너가 있음으로서 철로를 이용해 운송할 수 있다는 사실, 컨테이너는 수만명의 부두 노동자를 모이게 하고, 고속도로, 철로 발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뉴욕항은 처음 적게 시작한 컨테이너 사업은 정부의 주도 하에 전세계 무역의 중심지, 컨테이너의 중심지로서의 뉴욕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컨테이너 사업주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컨테이너혁명은 물류 뿐 아니라 금융, 문화, 교통,금융,교육를 바꿔 놓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으로 몰려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 100만 인구의 도시가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컨테이너 혁명으로 비롯되었다는 그 사실이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항구에서 가까운 곳엔 집이 들어서고, 사람이 모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전문화된 일자리를 찾아나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컨테이너 표준화는 커다란 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거대한 조선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초창기 컨테이너는 바퀴가 달린 채 그대로 배에 들어왔지만, 향후 바퀴가 없는 컨테이너가 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며, 컨테이너를 층층히 쌓을 수 있게 된다. 초창기 100개 남짓 컨테이너가 유조선에 들어왔다면, 지금은 6000개 이상의 컨테이너가 층층히 쌓일 수 있게 된다.


지나고 보면 그렇다.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우리는 바다 건너 저 먼곳의 먹거리,입을 거리,제품들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엉키고, 아이디어가 모여서 점점 더 도시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컨테이너 덕분이다. 부산항에서 서울가지 잇는 고속도로와 철로가 놓인 것도 마찬가지이며, 중국의 상하이 광저우가 세계전인 항구가 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나라의 산업 인프라는 항구를 기준으로 모여있으며, 사방 팔방으로 거미줄처럼 엮여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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