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퓰리즘의 세계화 - 왜 전 세계적으로 엘리트에 대한 공격이 확산되고 있는가
존 B. 주디스 지음, 오공훈 옮김, 서병훈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착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포퓰리즘은 복지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모 국회의원이 항상 자신의 정책을 내세우면서,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불고 있는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롸 샌더스가 포퓰리즘을 활용해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고 말한다. 기존의 내 상식은
샌더스는 포퓰리즘이 맞지만, 트럼프가 포퓰리즘이라고 해서 조금 의아했고, 포퓰리즘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트럼프 또한
포퓰리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포퓰리즘은 사회에 기득권이 존재하고 대중이 기득권을 잃어버진 대중이 존재함으로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쓰기엔 적잘한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중영합주의'는 포퓰리즘의 부정적인 의미이며, 그것이 온전히
포퓰리즘의 의미가 아니기에 책에선 포퓰리즘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사용함으로서, 국가와 사회 안에 존재하는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포퓰리즘은 두개로 나누고 있다. 좌익 포퓰리즘과 우익 포퓰리즘이다. 트림프는 우익 포퓰리즘을
내세우고 있으며, 하층 백인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다. 그의 정치 전략이 미국 사회에 먹혀 들었기 때문에, 오바마를 이은 새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그의 지지 기반이 현재 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샌더스는 좌익 포퓰리즘이며, 엘리트와 기득권에서
소외당한 대중들의 정서를 반영한다. 그들은 복지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며, 사회의 보편적인 권리 추구를 우선한다. 이 두가지 차이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며, 대한민국은 지금 좌익 포퓰리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좌익 포퓰리즘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는
국회의원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의원이다.
미국의 포퓰리즘과 유럽의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대중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정치 선동의 시작이 된다. 이런 현상은 과거 히틀러가 보여줬던 파시스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중을 이해하고 대중이 원하는 걸 얻게 해주면, 포퓰리즘은 상당한 영향을 가지게 된다. 즉 대한민국에서 포퓰리즘이
나타난 계기는 그것이 가지는 힘을 정치인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며, 거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정치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포퓰리즘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가 대한민국 사회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과거엔 지역주의가 정치에
먹혀들었지만, 그것이 힘을 잃으면서 포퓰리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럽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포퓰리즘 현상은
바로 유럽연합과 유로존이 형성된 이후였다. 유럽 연합은 처음 독일에 의한 양차 대전 때문이며,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진 경제공동체이다. 처음 유럽 연합은 장미빛 미래를 보여줬다. 하지만 유럽 연합에 위기가 나타난 건 미국에서 불어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이다. 미국 파생상품에 투자 했던 유럽의 각 은행은 큰 손실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파산에 이를 정도로 큰 부작용이 나타나고 말았다.그들의 문제 해결 방법은 유로 탈퇴이지만, 유로 탈퇴로 인한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보 못한 상황에 놓여져 있으며,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경제위기를 바라보고 있는 영국이 브렉시트 탈퇴의 명분을
초래하게 된다. 즉 브렉시트는 영국과 독일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지만, 영국이 유로존에 포함됨으로서 향후 영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여기서 우럽 사회에 이슬람 민족의 불법이민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초래되고 있으며, 포퓰리즘은 점차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유럽 남부 지역은 좌익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있으며, 북유럽과 중부 지역은
우익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경제 위기가 도래할 땐 좌익 포퓰리즘 현상이 나타나며, 경제가 좋아질 땐 우익 포퓰리즘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우익 포퓰리즘과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에 나타나는 좌익 포퓰리즘 현상을 보면
저자의 생각이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