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박열
손승휘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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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해서, 그에 대해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영화 <박열>이 개봉 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에 대해 계속 관심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 역사 속에서 잊혀진 독립운동가, 황태자의 혼례식 때 폭탄 투척을 했지만 실패로 끝나버린 역사속에 아쉬운 인물,그의 삶에 대해서 독립운동가라는 것보다 그의 일본인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지는 건 왜일까, 그건 나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독립 운동가 박열에게는 또다른 수식어가 붙는다. 그에게 아나키스트라 부르며, 아니키스트는 바로 자유와 평화를 우선한다.국가가 존재함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가 박탈된다고 생각했던 아나키스트들은 정부가 없는 국가를 원하며, 그들의 이상은 지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나키스트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건 2000년 개봉했던 영화 아니키스트였으며, 그 영화속에 등장하는 가네코는 예지원이 맡았다. 불평등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조선시대에서 ,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키스트를 자유와 동일시 했으며, 그래서인지 자유를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자유를 잃어버린 조선시대에 살았던 독립운동가 박열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열은 일본에 살았고, 주변에 일본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가네코는 박열을 좋아했으며, 박열이 꿈꾸는 이상에 따라가게 된다. 박열은 국가의 독립을 원했으며, 가네코는 그런 박열을 좋아하게 된다. 일본인이았지만 조선인이 되고 싶었던 가네코는 스스로 박문자가 되어, 일본어를 잘하는 조선이 행상이 되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조선 인삼을 들여와 팔았던 가네코는 자신이 좋아했던 박열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하였다.


죄수 번호 102번. 면회, 천황 폐하에게 폭탄 투척이 실패로 끝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은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살았던 박열과 박열을 위해 살았던 가네코는 운명 공동체였으며 동지였다. 그리고 피고가 되어서 예비 심문을 받아야 했던 두사람은 피고 대기실에서, 두사람은 다정하게 안기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은 외부로 노출 되었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에 두 사람은 이용되었고, 역사 속에서 드러났듯이 가네코는 자살하고 말았다. 물론 박열은 사형 언도를 받았지만, 무기징역이 되었고, 광복 이후 풀려나게 된다.


일봉인 여성으로서 조선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금기 자체였다. 가네코의 어린 시절 불우했던 삶이 이상주의자였던 박열에게 이끌렸고, 그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한다는 건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녀의 삶은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열이 의도한 세상이 온다해도, 가네코는 일본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조선에 박열과 함께 살아간다 해도 행복했을까, 이 두가지 선택의 길에서 가네코의 생각과 가치관이 궁금했다. 그리고 가네코에겐 오로지 사랑 그 하나만을 쫒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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