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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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저스티스맨>의 표지를 바라 보았다. 붉은 불빛 아래 서 있는 한사람, 그 한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리의 또다른 자아는 아닐까 생각하였으며, 저자 도선우씨께서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 그 사건들은 연쇄살인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연쇄살인에 초점을 맞추면 저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의뭉스럽다. 소설 속 연쇄살인이라는 하나의 껍데기를 들어내면서 나는 과거 10년전 사건 하나가 생각났다. 그건 '미네르바 사건'이다.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썻던 사람은 그 당시 미국 경제, 리먼 브라더스 부실과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해 언급했으며, 수많은 네티즌의 관심과 이목을 끌게 되었다. 처음 '미네르바'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이들은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마니아층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 , 메시지를 그대로 복사하고 붙여넣었으며, 바다위의 잔잔한 작은 파도가 쓰미로 바뀌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박대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은 경제에 능통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익힌 경제적 지식을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뱉어냈으며, 인터넷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익명성을 동원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프리즘에 대해 차별화 하였고, 표현의 자유가 먼저이냐, 사회의 질서가 우선이냐 공분을 양상시켰다.


사람들은 미네르바 사건이랑 이 소설이랑 무슨 상관일까, 그건 '미네르바'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터넷 까페 운영자 '저스티스맨'을 연상할 수 있었다. 그 두사람은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사회에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권력이 아닌 네티즌들이 모이고 관심가지면서 형성해 놓은 권력이다. 네티즌이 얻고자 하는 관심과 그 관심에 충족시켜 주는 그들이 던지는 생각과 가치관, 그것이 진실이던, 거짓이던 우리는 상관없다. 물론 그들은 정의를 표명하지만, 그 정의에 대한 허구적 실체에 대해 관심가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정의는 껍데기였으며,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인간의 욕망이 감춰져 있다. 소비할 가치가 있으면, 소비하는 인간의 특성, 소비할 가치가 사라지면 그것은 철저히 잊혀지고 만다. 미네르바에 대해 수많은 언론들이 단독, 속보라는 타이틀을 제목에 붙이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바꿔쓰는 그들에겐 사명감이나 정의감은 개뿔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닌 밥벌이를 하게 만들어 주는 기사들을 찾아 재탕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거짓된 신념이었던 것이다. 소설 <저스티스 맨>에서도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모습들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 안에는 정의와 사명감 선과 악의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


소설 <저스티스 맨>에는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연쇄살인 사건의 첫 시작은 인터넷에 올라온 하나의 사진이다. 그 사진이 자극적일 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한국인이 가지는 오지랖은 그것을 민주주의와 정의로 포장하게 된다. 복사하고 붙여넣기 하면서 그들은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능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르다는 걸 보여주는 이중적인 행태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연쇄살인 사건에 관심 가지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포털 사이트에서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며, 운영자 '저스티스맨' 이 만들어 놓은 까페였다. 그는 첫번째 살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예리한 관찰력과 언론과 경찰이 흘려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가상의 공간에 모여들게 되었으며, 선과 악으로 나누어 자신의 생각을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이들로 구분지어진다. 이 공간에서 욕설이 오가며, 서로의 생각에 대해 작의적인 비판도 이어지는 가운데 '저스티스맨'의 생각은 예리한 칼날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그 메시지가 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하나의 완성된 퍼즐을 맞추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첫번째 연쇄 살인은 두 번째 연쇄 살인과 세번째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처음과 두번째의 연결고리를 알고자 했으며,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는 무관심한 형태를 보이며, 정의라는 허구의 실체가 인간의 공격성과 파괴성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첫번째 살인에서 피해자는 '피해자로서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형태의 피해자'였다. 자시니 한 행동으로 인해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간의 설전을 보고 있는 제3의 인물 '관찰자' 가 존재한다. 언론과 범인 그리고 연쇄살인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자신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들, 게시글이나 댓글을 전혀 남기지 않는 그들은 모두 제 3의 인물에 해당된다.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신적인 존재이며, 권력의 실체는 바로 '저스티스맨'이라는 까페 운영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처음엔 놀이의 형태에서 남의 일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영웅을 만들어내는 행태에서 점차, 자신의 숨어있는 불안과 공포, 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살인행위가 자신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게 되면서 ,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 하나의 인간의 군상이 소설 <저스티스 맨>에 압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저자는 범인의 실체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고 소설은 마무리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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