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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을 멈추고
사사키 아타루 지음, 김소운 옮김 / 여문책 / 2017년 4월
평점 :
인문학의
정수 철학책을 접하는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인간에
대한 탐구보다는 철학을 통해 질문을 하고, 철학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는 관점 또한 큰 차이가
없으며, 현대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사변적인 철학 이론에 접근하게 된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건 중세와
근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12세기는 중세 시대이다. 중세 시대 대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의 형태가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조선 시대 최초의 대학 소수서원보다 더 못한 형태를 지닌 게 서양의 대학의 초기 모습이 아닐런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옥스포드 대학도 마찬가지이며, 건물이 없는 대학의 형태에서 학생이 모이면, 그들은 건물을 빌려서
그곳에서 경연을 하게 되었다. 문맹이 넘쳐 흘렀던 그들의 지적인 사유는 지금 현재의 대학에 대한 개념과는 달랐다.. 여기서 사사키
아타루는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 혐오증의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있다. 그건 유럽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열등감, 그들이 가진
문맹률과 지식의 부족을 감추기 위해서는 유대인 말살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원 후 부터 중세까지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지식들,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를 끌어 올렸고,
유대인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게 된다.
책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1Q84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1995년 일본에서 옴 진리교에 의해 자행되었던 도쿄지하철 테러 사건, 그들은 독극물 사린가스를 활용해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사린 가스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 1Q84이며, , 최근 김정남 살인 사건 또한 북한이 저지른 사린
가스에 의한 범죄로 추정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서 '옴진리교적인 이야기에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는
1Q84의 주인공 아모마메라는 여성의 생각과 가치관에는 죽음에 대한 저항이 아닌 죽음에 대한 반복과 강조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 아유미와의 대화 속에서 삶과 죽음,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죽음을 드러내고 있으며, 종말을 부추기고 있다.중세 시대의 종교가 사라진 근간에는 정보의 향유,
정보의 명력적인 속성이 감춰져 있으며, 인간은 삶 속에서 텍스트 안의 정보를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놓여졌기 때문에 종교의 힘이 약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죽는다. 전부 죽는다. 기필코 죽는다.
그러므로 그 죽음을 엄연한 우리의 자유로서 받아들이기로 각오하면 민족의 명운을 보전한다!"라고,이쯤이면 감이 오시죠. 속상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누구나 아는 드라마 같은 통속적인 소설을 초월했을,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시어를 특권시하는 하이데거의 이 주장은
얼토당토 않는 통속적인 소설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p107)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에 놓여진다. 어떤
위대한 인간도 2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간다.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인간이 활용하고 있으며, 국가도 또한 죽음을
활용하고 있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갈림길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질병에 걸린 환자는 자신의 목숨을
돈과 바꿔야 하는 운명에 놓여진다. 국가가 자행하는 권력과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쟁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국민은 가질 수
없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나 부상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사로 잡고 있다. 저자는 그렇게 우리 삶을
고찰하고 있으며, 하이데거 뿐 아니라 푸코의 철학까지 언급한다. 또한 책에는 소설 돈키호테를 통해 세르반테스의 인생과 그의 인생은
세익스피어와 무엇이 다르고,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뀐 이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작품으로서 세익스피어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작품이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