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지금 우리가 원하는
박종평 지음 / 꿈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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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한가지 불문률이 있다. 그건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대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충사에 걸려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이 상상화이며, 잘못되었음에도 그것을 공론화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박정희시대부터 지금까지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온 우리들의 역사 교육의 폐단이다. 이순신 장군의 삶에서 좋은 것만 모아서 그의 업적을 영웅화하고, 인간미를 드러내려고 한다. 그의 업적이 빛날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 평양으로, 의주로 피난간 선조는 나쁜 임금이 되었고, 칠천량 전투에서 진 원균 또한 무능력한 장군이 되고 말았다.


역사에서 이런 우리의 모습은 잘못되었다. 이순신의 리더십 중 하나 원칙주의 리더십, 그의 리더십은 임진왜란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했다. 그의 삶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시작해 1598년 노량해전으로 끝났다. 그에게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칠천량 전투에서 패퇴한 원균, 13척의 배를 가지고 일본군 133척의 배와 싸운 이야기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조선의 국운이 달린 위기의 순간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평화로운 상황이라면, 이순신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채 낙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그런 역사이다. 역사 속 많은 원칙주의자들에게 융통성이 없다 말한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순신에게도 그런 낙인이 찍혔을 가능성도 크다. 그는 역사속에서 파면 당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 세상이 평온하면, 원칙주의자보다 기회주의자가 더 잘 사는 건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자주 나오는 건 지금 대한민국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다. 저성장에 저출산과 고령화,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우리들 마음 속에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백성을 생각하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치,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자기의 안위만 생각하다, 나라를 망쳐 놓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 과거의 대통령의 전철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음 속 언저리에 감춰져 있다.


이순신의 삶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는 정읍현감에서 전라 좌수사로 신분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의 낙하산 인사는 임진왜란이 감지되었고,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가 엇갈려 버렸다. 일본의 전쟁 준비가 확실한 상황에서 조선의 조정은 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다만 이순신의 형과 친분이 있었던 류성룡은 이래서는 안된다는 계산이 섰고,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물리쳐 온 이순신을 눈여겨 봤다.그의 무인으로서의 능력에 문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함께 보았다. 이순신은 자신의 원칙주의로 인해 신분 상승을 화지 못한 먹통이었지만,조선의 재상 류성룡을 만나서 ,조선을 구할 수 있는 나라의 영웅으로 바뀌게 된다. 그의 업적은 박정희의 작품이다. 그의 독재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의 삶을 부각시켰으며, 친일 화가에 의애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을 만들었고, 현충사를 가꿔 나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순신의 삶을 배워 나갈 필요는 있다.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순신이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해전을 막았던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1592년 4월 13일 16만 일본해군이 조선을 유린하였지만, 이순신으로 인해 그들의 보급로가 끊어지면서 막막해졌다. 일본군은 한양을 자신의 수중에 넣었고, 선조는 평양으로 의주로 도망다니게 된다. 선조는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백성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살아나가기 급급하였다. 이순신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기존에 없는 무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거북선의 탄생 비화에는 중국 남송 초기의 무장 악비가 반란군 장수 양요를 젹퇴한 기록이 남아있는 <정충록>에 있다. 류성룡이 구해준 <정충록> 안에 있는 그림하나가 거북선을 탄생시켰으며, 조선 수군의 사기를 증진 시켜 나갔다. 여기서 이순신의 해전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류성룡의 문인으로서의 능력과 그의 물질적인 지원이 있다. 막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류성룡이 쓴 <증손전수방략 (增損戰守方略)> 이 이순신에게 필요했다.


리더와 리더십은 그렇게 탄생된다. 세상이 이순신을 알아주고 이순신은 그 시대에 맞는 인물이며 리더였다. 나라의 위기를 구할 수 있었고, 조선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다. 자신이 적군의 화살에 맞고 쓰러지는 가운데, 조선 수군의 사기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수군을 격퇴하고, 이순신의 죽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은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리더, 이상적인 리더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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