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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삶을 안다는 것 -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
박명우 지음 / 이엘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 이 책의 부제를 보면서 첫 느낌은 숨막힘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추상적인 질문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걸까, 나에게 또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란
무엇인지 나 스스로 사유하게 되고, 성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아란 나를 알아가는 것이며,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나는 그 물음에 대해 나 스스로 대답할 수 없었다.그건 나 스스로 자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인지 물어보는 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나의 행복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 동물이 가지지 못한 사유를 우리는 생각하며 살아가며,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또한 '나는 왜 사는가'에 때한 질문은 인간은 반드시 죽음으로 나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그 순간 그 사람은 '나는 왜 사는가' 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불행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부인하게 되고, 스스로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신약을
얻지 못함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하였고, 죽었음에도 자기 스스로 마지막까지 죽음을 거부하게 된다. 이집트의 왕들 또한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은 비로서 행복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서 평온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좌우명은 단순하면서도 요약적인 삶의
기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좌우명의 필요성이 삶의 원칙을 향한 첫 걸음이겠지만, 이 좌우명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부분이겠다. 혹자는 '좌우명이 어때서?' 또는 '좌우명까지 간섭해야 하나?'라고 물을 수 있지만 이것은 오지랖이 넓어서라기 보다는 좌우명에 따른 결과가 천양차이이기 때문이다. (p166)
삶을
이해하는 대원칙은 바로 나의 삶 전체를 끌어가는 하나의 원칙이다. 그 원칙의 첫걸음이 바로 좌우명을 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된다. '대충대충 살자' 처럼 막연한 좌우명도 그 사람에게 하나의 좌우명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좌우명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를 바로 잡아주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인간은 좌우명에 의지하게 될 때 비로서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서 평온함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것이 나쁜 좌우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나의 좌우명이며, 좌우명을 통해 나 스스로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게 되고, 성장할 수 있다.
저자는
'태도가 삶의 전부' 라고 말한다. 여기서 태도란 우리가 생각하는 습관이나 가치관이 아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항상 언급되는
것이 태도이며, 나 자신을 안다는 건 내 안에 좋은 태도와 나쁜 태도를 명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여기서 태도에 대한 전략이
어떠냐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게 되고, 좋은 삶으로 나아갈지, 나쁜 삶으로 나아갈지 결정된다. 행동을 취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연하고, 명확한 태도이다. 또한 주어진 운명을 따라가기 보다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태도를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
나
자신을 아는 것, 자아에 대해 알아가는 것, 나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 비로서 좌우명이 가지느 힘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진
좌우명은 사람을 끌어당기게 되고, 나와 함께 갈 사람을 얻는 것 또한 나 자신을 아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절벽에 서 있는 나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