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로마 읽기 - 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리더십과 자기계발의 지혜
양병무 지음, 정기문 감수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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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책에 나와 있는 로마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쉽게 읽혀질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축약한 형태에 로마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행복한 로마 읽기>를 로마 역사 입문서라고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입문서라 하기에는 포괄적이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로마. 로마 또한 우리 단군 조선처럼 건국 신화가 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으며, 서기 476년 서로마의 멸망과 함께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은 사라지게 된다.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로마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수 있으며, 로마가 대한민국과 같은 반도국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왕정을 추구하는 로마는 건국 후 200여년이 흐른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기원전 509년부터 집장관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게 되고, 호민관과 평민관에 의해서 서로가 견제되어 가는 로마의 정치 안에서 로마가 추구했던 포용성, 개방성, 다양성이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제국으로 남아있는 하나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다른 나라를 속주로 만들면서 그들에게 억압이나 편견 없이 대했으며, 언제라도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로마가 가진 특별함은 바로 로마 법과 로마가도이다. 또한 인구조사를 일찌감치 시작했던 로마의 선거제도는 지금 현재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흡사하다. 여기서 로마의 법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아피우스가 직접 건설한 아피아 가도는 로마의 물류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며,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로마가도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교될 수 밖에 없으며, 만리장성이 폐쇄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족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면, 로마가도는 개방성을 추구하며, 로마가 1200년의 역사를 지닐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00년 동안 로마에 위기가 있었던 적이 두번 있다. 켈트 족에 의한 전쟁이 첫번째 이며, 두번째는 야만인 서고트 족에 의해서였다.켈트 족의 침입을 잘 막았던 로마는 그러나 서고트족의 침압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로마는 붕괴할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로마의 붕괴에 대해서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으며, 로마의 붕괴는 우리의 역사속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카이사르의 이야기. 로마에서 빠질 수 없는 그에 대한 삶.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서는 그에 대한 역사가 두권의 책을 통해서 서술되고 있다. 폼페이우스와 경쟁 관계였던 카이사르는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그럼으로서 로마에서 집정관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였으며, 갈리아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로마의 영토는 확장 되었고, 로마의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를 만들어 주었다. 여기서 갈리아는 프랑스, 벨기에,룩셈부르크, 네덜란드,독일 서부,스위스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모습에는 영국이라는 국가는 없었다. 또한 갈리아인과 게르만인을 잠재운 갈리아 전쟁기를 카이사르 스스로 작성하였고,후세에 남기게 된다.  그의 권력에 대한 욕심, '루비콘 강을 건넜다','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유명한 말 속에서, 카이사르가 스스로 루비콘 강을 건넘으로서 로마를 장악하였고 일인 권력자로서 우뚝서게 된다. 물론 그럼으로서 카이사르의 경쟁자였던 폼페이우스는 몰락하게 된다. 이런 카이사르의 삶은 우리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서 한번 더 되새기게 하였다. 종신 권력자가 되려 했던 카이사르는 원로원 주도로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을 당했으며,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 대통령 또한 김재규에 의해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역사는 반복되며, 허락되지 않은 독재자는 언제라도 정적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죽임으로서 로마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닌 버림을 받았으며,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 됨으로서 카이사르의 후계자는 옥타비아누스가 되었고,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로마인들이 추구했던 정치 경제, 법, 사회와 주변 국가와의 관계는 다시 반복되며, 비슷한 문제들을 다시 생겨날 수 있다. 로마가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하였던 것처럼 지금 현재 강대국들은 로마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을 공부하면서,그들의 강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보놘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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