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울보목사 - 나 외로울 때 찾아와 울어줄 사람
호용한 지음 / 넥서스CROS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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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남짓 살아가는 우리의 삶..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스펙트럼 속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걸 느끼며 살아갑니다. 행복과 성공에 욕심내며 살아가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며,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만약 살아가면서 큰 어려움 없이 성공만 하며 살아간다면 어쩌면 우리는 주변사람들을 보지 않고 ,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만 보고 세상살이를 잘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을 경험하고 느낀 사람들이 있기에 베품과 나눔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누고 베풀면서 인정을 느끼는 것, 옥수 중앙교회 울보목사 호용한 담임목사님 또한 그런 분입니다.


1957년에 태어나 전쟁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호용한님의 삶.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에게 과외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군 사관학교에 합격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미수복지 거주자였던 호용한 목사님은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 최종으로 탈락되었습니다. 그렇게 차선으로 선택한 길이 신학대학교였으며 총신대학교에서 주간에는 일을 하고 야간에 대학교를 다니는 생활을 하였으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수원에서 처음 목사로 시작하였으며 성동구 옥수동에서 목회일을 하였습니다.


성동구 옥수동.문득 20년전 드라마 <서울의 달> 이 생각났습니다. 시골노총각이었던 박춘섭(최민식) 과 제비 김홍식(한석규) .. 그들의 삶의 터전이 서울의 달동네 옥수동이었으며, 그 당시 달동네의 모습은 최근까지 옥수동 삶 그 자체였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사회에서 소외계층으로 살고 있는 옥수동 사람들의 힘겨운 삶.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늘어나면서 호용한 목사님이 시작한 일이 우유배달입니다. 매일 한 개의 우유를 배달해 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유가 사라지지 않은채 그대로 있다는 건, 그분이 아프거나 신병에 이상이 있아든 것입니다. 그렇게 처남의 후원으로 시작하였던 우유배달은 2006년 우유배달을 멈추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옵니다. 매달 200만원씩 후원해주는 처남의 후원이 호용한 목사님의 입장으로는 미안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 순간을 교인들의 후원금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며, 우유배달 사업은 계속됩니다. 물론 더 나아가 국내 각지의 후원 뿐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삭스라는 곳에서 후원금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의 후원은 정확해야 했으며, 다른 곳에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장학사업과 가난한 삶을 위해 살아왔던 호용한님의 또다른 별명은 성동구 프란체스카였습니다.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실천하는 것,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에 의해 상처도 깊었으며, 때로는 위기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낮은 곳을 향하면서 정부의 지원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도와주었던 호용한 목사님의 삶. 그런 삶은 음지에 살가가는 이들에게 따스한 하나의 빛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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