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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 서유재 / 2016년 9월
평점 :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특별한 주제로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책과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모래알이 뒤섞인 책들 사이에 진주알과 같은 느낌을 주는 책.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 사이에서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는 책과 마주할 땐 가까이에 두고 한번 더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으며, 작가의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게 된다.
저자 구리하라 야스시. 와세다 대학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이력 속에서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다양한 스펙과 자격증이 넘쳐 나지만 실제 취업이나 무슨 일을 하는데 자격증이 필요 없는 곳이 많으며, 그런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격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스펙 사회 속에서 취업이라는 미끼로 착취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서영인씨 또한 저자와 동질감을 느꼈으며, 이 책을 번역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에서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며, 사회 안의 규칙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우리들..우리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애초 자비에 우열을 정하고 은혜를 갚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 웃기는 일 아닌가.(P86)
부처의 가르침에 들어가 있는 궁극적인 도덕적 가치 자비에 대해서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산과 강,물과 나무, 바람, 이는 파도 소리...이 모든 것에는 자비가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행하는 자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또한 우리가 키우는 가축들이 생산해 내는 알과 고기들을 사용하여 우리는 생존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자비의 일종이다. 인간은 그렇게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삶이 일상생활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소비사회에서는 집이나 차의 소유여부가 인간의 사회적 지위를 정한다. 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리라는 상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보다 길바닥이 더 소중한 것이다. (P122)
길바닥 뿐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는 책에서 말하는 상품 가치와 관련하여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서 그들은 권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의 가치가 떨어질까 전전 긍긍하게 된다. 사드 배치에 민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밀양의 송전탑 건설, 아파트에서 빚어지고 있는 캣맘 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도덕이나 건강을 내세우지만 결국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모든 상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도리어 상승한다면,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주의 방폐장이 건설이다. 경주에 방폐장 건설이 가능한 것은 방폐장 건설로 인하여 얻는 이득이 그들이 가진 상품의 가치 하락보다 높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다.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군대를 뒤따라 걷는다. 저절로 발걸음이 군대와 보조를 맞춘다. 군대의 발걸음은 원래는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거기에 맞추도록 강제한다.(P163)
인간의 숨어있는 무의식..그 무의식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게 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후 문제였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과 맞춤으로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조직이 만들어지고 관행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관행이라는 또다른 모습들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이 습관화 되고 표출된 것이다.
인간은 역사의 기억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국가에 순종하게 되어 버린다. 순종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가 편이 되어 억지주장을 하기까지 한다. 개인의 판단 따위는 잃어버린 채 이미 일어난 과거의 역사에 얽매여 그것이 싫은 나머지 막무가내로 부정하기만 하는 것이다.어차미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우리만 비판받아야 하나.(P187)
전세계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 의식에 대해 저자의 촌철살인이 엿보인다.일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그들의 모습에 대해 우리는 분개하게 된다. 북한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자유로울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우리 삶 곳곳에 숨여있는 치욕의 역사들..우리 또한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감추고 있다. 친일, 빨갱이,종북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우리들의 이념 전쟁.. 한 나라의 권력자가 바뀔 때마다 우리의 역사 또한 재수정되고 있으며, 입맛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과거 국가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존재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국가가 주는 그 보호가 달갑지 않다. 그들은 보호한다는 이유로 개인이 마땅이 누려야 할 권리를 침범하고 있으며, 국가에 의해 사람이 죽었음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런 현실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며, 항의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약자로서의 사회적인 현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