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남자, 그 남자를 바꾼 여자 - 대궐의 꽃 왕후의 지혜 잔혹사
이소영.김서윤 지음 / 북씽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역사에서 여성의 존재는 왕의 곁에서 왕이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비류,온조의 어머니 소서노..소서노는 주몽의 아내로서 실제 남편은 우태였다. 그리고 주몽의 아내가 되었던 그 당시 소서노는 과부였으며 30이 넘은 나이였다. 


책에는 남자가 왕이 되도록 하였던 여인들의 일화가 있으며,20가지로 분류하여 자세히 우리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소서노는 여장부 타입으로서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 책에는 많은 부분 조선의 여인의 이야기가 많은데,관심이 갔던 여인은 백제의 여인이다. 


현재 백제의 역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남아있다.그 두 역사에서 백제는 한반도 지역에 국한되어 백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백제의 왕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빈 공란을 중국의 역사서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략가 타입 백제 책계왕의 비 보과 부인과 주도자 타입 백제 무왕의 비 사택왕후에 관심가지게 된다. 


백제의 왕 책계왕과 보과 부인에 대해서 사실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백제의 8대 9대 10대 왕은 고이왕-책계왕-분서왕의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책계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알 수가 없다. 고이왕의 장남인지 아닌지,언제 태어났는지 알수 없는 책계왕에게는 보과 부인이 있으며 백제와 주변나라의 전쟁에서 책계왕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 보과 부인의 역할이 필요했다. 보과 부인이 가지고 있는 판단력과 지혜가 책계왕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백제 무왕의 비 사택왕후..우리는 서동요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무왕과 절절한 선화 공주의 사랑 이야기. 미륵사를 선화공주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지만,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은 서동요 속의 역사를 부인하고 있으며, 선화공주가 무왕의 비였는지 아닌지 논쟁꺼리가 되어 버렸다. 그럼으로서 사택 왕후의 존재감이 드러났으며 금제사리 봉안기의 기록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서 사택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하였던 이유는 백제의 평안을 기원하였기 때문이며 주변 나라의 공격으로 인하여 백서의 삶이 안정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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