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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속 파랑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세명이 살아남았다.김이삭,피셔 그리고 셀린..그들은 살아 남았지만 생존을 걱정해야만 했다.
왜 세사람일까. 네사람도 다섯 사람도 있는데. 그건 어쩌면 세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반드시 그 세사람 중에는 여성이 있어야만 했다.그래야만 그렇게 해야만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그 일생에서 마지막 종족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 그렇게 소설은 사유로 시작해서 사유로 끝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지상에서 핵전쟁이 일어나 깊은 바다속에 섬광이 비추게 된다. 그럼으로서 지상에서 어떤 이들이 살아 남았는지, 잠수정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얼마나 되는지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83명이 죽고 세사람이 남아있는 그 공간에서 그들이 먼저 했던 것은 죽어있는 시신을 바닷속으로 밀어넣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에게 있어서 국가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거추장 스러웠던 것이다. 물론 잠수정 안에서의 체계도 호칭도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어쩌면 83명이 죽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들이 죽음으로서 남아있는 잉여식량은 세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살아가기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 타협을 하게 된다. 피셔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셀린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능력 여기에 이삭의 젊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 시켜 주는 것이다.
피셔와 셀린. 두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셀린이 이삭의 몸을 원하는 것도 이해가 갔으며셀린이 자신(피셔) 이 아닌 이삭을 선택한 것에 대해 질투를 느끼는 피셔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어쩌면 셀린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의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란 오랫동안 남아있어야 했기에 피셔보다는 이삭이 더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피셔가 가지고 있는 나이와 그에게 남아 있는 남아 있는 시간들은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과 바다속에서의 삶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지상이라는 공간은 태양을 스스로 만들지 않아도 산소를 만들지 않아도 공급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저 깊은 바닷속 심해에서 생존에 필요한 산소와 태양은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세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농사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지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셀린이라도 불가능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의미하고 잇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세사람이 살아 남아서 생존하고 지상으로 나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들은 어떻게 생존하려고 애를 썻으며 생존하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꼈던 것들.그것들이 모여서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런지. 작가가 이야기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이란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아주 가까이 있다는 걸..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