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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평점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년4월 13일 일본이 쓰시마를 거쳐 부산을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1598년 8월 18일 죽음 그리고 1598년 11월 24일 일본군이 철수를 함으로서 끝을 맺는다.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이순신장군 그리고 명량해전 그리고 이순신이 마지막에 전사한 노량해전과 선조의 피난이 떠오를 것이다..그렇다면 그 나머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 통일에 앞장선 각 지역 영주 다이묘에게 고생(?)했다는 명목으로 조선과 명나라를 침공하여 그들에게 나누어 주려던 목적으로 시작된 전쟁이었다.9개 군단 17만명[고시니 유키나가,가토 기요마사,구로다 나가마사(黑田 長正),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후쿠시마 마사노리 (福島正則),고바야카와 다카카게 (小早川隆景),모리 데루모토 [毛利輝元),우키타 히데이에 (宇喜多秀家),하시바 히데카쓰(羽柴秀勝)] 이 이끌고 조선을침공한 전쟁은 1598년에 전쟁이끝나게된다...이 두 전쟁으로 인해 조선 뿐 아니라 일본의 분열과 명나라의 전쟁비용 부담으로 재정 파탄으로 청나라로 넘어가는 원인을 초래 하게 되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은 우리가 알던 이순신 중심의 임진왜란에 관한 역사를 명나라와 조선, 일본간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며 전쟁으로 인한 자기 성찰과 똑같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하지않기 위해서 쓴 책이다...임진왜란 발생 이전 일본으로 보낸 통신사 황윤길이 보낸 전갈에서 일본이 조선을 칭공할 가능성이 높다는소식이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전쟁에 대한 준비를 안 하게 되고...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백성들을 외면한채 평양으로 피난을 가고 평양성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다시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된다.일본의 침입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자 명나라에 구원 요청을 하게 된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왜군이 밀고 들어오는 와중에 이순신은 전라도에서 일본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왜군의 보급로를 끊는 노력을 다하지만...조정의 이간질에 이순신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물러나고 원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원균은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는 커녕 술과 향락에 빠져 왜군의 재침입에 대패를 하고... 급한 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복귀시킨다...12척의 배로 300척의 왜군을 물리치는 우리가 잘아는 이야기...전세가 점차 우리에게 기울지만 명나라의 송응창과 심유경에 의해 번번히 왜군을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나중에 심유경이 왜군과 공모한 사실이 명나라 조정의 귀에 들어가서 참수되게 된다...
일본군이 진주성 함락을 지켜본 류성룡은 또다시 진주성에 쳐들어올지 모르니 성 주변에 포구 설치할 것을 이야기 하지만 묵살 당하고 진주성에서의 두번째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그 소식을 접한 류성룡은 탄식을 하게 된다..우리가 이순신만 기억하고 다른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무능함을 전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며 근현대사를기록하는 역사가들로 인해 이순신 영웅화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는것을알 수가 있다...그러나 8년간의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이순신 혼자만으로는 절대 수습할 수 없는 큰 전쟁이었으며 이순신 뿐 아니라 그나머지 역사에 대해서도 꼼꼼히 확인할 필요도 있으며 명나라의 시선으로 보는 임진왜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