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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개똥지빠귀라는 새 한마리가 산자락이 끝나는낮은 관목 속으로 날아왔다. 등은 껍질 벗은 소나무처럼 짙은 갈색이었고, 머리는 검은색에 눈 위로 눈썹 같은 흰선이 그어졌고, 배는 흰 바탕에 검은 반점이 얼룩덜룩했다. 그곳은 작은 새들의 낙원이었다. (-8-)
개똥지빠귀들은 강변에서 멀리 떨어진 낮은 관목 숲이나 산자락이 시작되는 키 큰 상록수들이 자라는 숲의 초입에 여러 무리가 살았다. 흰점박이 개똥지빠귀는 이미 남쪽 나라에 가서 두 차례나 겨울나기를 겪어본 어른 새들 중 하나였다. (-16-)
열살 먹은 팽나무가 서 있는 숲속 빈터에 운석이 떨어진 것은 어느 여름 녹음이 무성할 때였으니 그 돌 조각은 지상의 나이로는 한 살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캄캄한 하늘을 흘러 다니던 이런 작은 운석이 지구라는 거대한 땅덩이와 같이 사십오억살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39-)
광덕 스님이 돌아간 뒤에 보경사의 방장 자리는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몽각은 스물다섯살이 되도록 여전히 장원에서 채소를 기르며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그는 잘 익은 참외와 수박을 따서 지게에 얹어 본사로 올라갔다. 절 경내가 어딘가 평소와는 달랐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가마 두 채가 서 있고 가마꾼인 듯한 장정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60-)
몽각은 대나무 살을 구부리고 묶어서 깔꾸리를 만들어 조개를 캐는 데 섰다. 다섯해가 지나면서 몽각은 혼자서 생강 하구에 돌담을 쌓고 수문을 만들어 돌 어살을 만들었다. 옥구현의 장날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어느 촌 늙은이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것을 그대로 해보았다. 독살은 이를테면 물고기 함정이었다. (-79-)
그는 한때 그가 부지런히 잡아서 먹고 몸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들에게 자신을 보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비틀거리며 갯벌로 나온 길이었다. 섬의 서쪽 능선을 넘어가면 곧 수라 갯벌이었다. 그는 갯벌과 아득하게 멀리 밀려나간 바닷물의 중간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털을 날리고 얼굴을 간지럽혔다. (-83-)
여기 당골관은 지금 내가 맡고 있지만, 나 죽으면 니가 맡을 것이니라, 우리 몸주는 저 팽나무 할매 서낭님이다. 철마다 이 원근 동네 길흉사에 굿차례를 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와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떠들썩하면서 혼례를 치렀다. 자근연이는 하제로 시집을 오자 금방 고창댁이라는 어른 이름이 생겼고, 더 나이먹으면서 하제 당골네로 불리게 되었다. (-104-)
포구는 배뿐만 아니라 외부의 사람과 물자와 소문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해 사월에 유분도는 한양에 다녀온 조운선의 도사공으로부터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두 명의 프랑스인 주교를 포함한 서양 선교사 아홉명과 그들의 선교를 도운 양반들을 체포 조사하고, 전국적으로 천주교 신도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이며, 서학에 관한 서적을 일체 압수하여 불태우라는 나라의 엄명이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127-)
전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갔고 얼마 전 충청도 해미에서는 천여명의 천주학쟁이들 소탕은 전국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주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잡잡혀 들어갔고 얼마전 충청도 해미에서는 천여명의 천주학쟁이들을 한꺼번에 생매장했다는 소문이었다. (-139-)
배춘삼은 아들이 우금치 싸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전해 들었다. 그는 줄포의 갯줏집을 폐하고 오래전부터 바라던 대로 부안에 사두었던 농토를 찾아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하였다. 그의 귀한 손자 성천은 논에서나 밭에서나 농사 잘 짓는 상일꾼으로 자라났다. (-165-)
속성 교육을 마친 생도들은 군산항에서 수송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직행했다. 이들은 대개 하제 포구 마을로 몰려나와 떠들썩하게 마지막 밤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팽나무 주막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나오다 떠들썩한 소음 가운데서 만취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젊은이는 일행과 따로 떨어져 음식이 나오는 부엌 옆방의 툇마루에 허리를 잔뜩 꼬부리고 앉아 있었다. (-174-)
방지거 신부가 서울 대성당에서 보좌신부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처음으로 어떤 목소리를 들었던 날 밤을 기억한다. 새벽녘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돌로 지은 거대한 낭하의 끝에서 울려 퍼지듯 굵직하고 우람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어디 있느냐? 그는 아직 덜 깬 상태에서 대답했다. 네, 저 여기 , 하다가 문득 잠에서 깼는데 분명히 귓전에 그 목소리가 또 들렸다. (-193-)
유신부는 이천이년에 부안 성당에서 시무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난 삼십년는 폭풍을 정면으로 맞받으며 걸어온 듯한 세월이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 곁에 늘 함께 있으려 했다. 수년간의 투옥을 치르고 나와서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나 농민, 철거민들의 농성 현장과 임시 거처들을 찾아다녔다. (-197-)
배동수는 하제 마을이 토지 수용을 당하고 주민들이 반쯤 떠났을 때 들른 적이 있었다. 빈집이 많았지만 , 그래도 그때까지는 울도 담도 전봇대와 지붕도 멀쩡하게 서 있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두번째로 산업단지가 조성된 간척지의 내초동과 옛날 사자암 봉수대 아래 어은리에 이주 단지가 마련된 이천십이년에 나머지 세대들이 모두 하제 마을을 떠났다. (-214-)
1943년생, 만주 장춘에서 태어난 황석영 작가가 쓴 소설 『할매』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삶을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600년 한 곳을 지키고 있었던 팽나무,그 팽나무가 이 소설에서, 할매를 뜻하고 있으며, 정확히는 할매 나무였다. 한곳에 정착해 있었고,그곳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갔다. 개똥지빠귀가 머무르고,쉬었다가 떠나는 그 나무는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공간이면서,장소였고, 삶을 지켜주는 영혼과 같은 곳이었다.역병을 물리치고,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였던 것이다.
군산엔느 일제가 남겨놓은 적산가옥이 많이 있다. 그곳에서는 일제 침략이 빈번했고, 수탈의 상징이 되었던 곳이다. 동학 혁명, 천주교 박해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가 지난 이후에도,새만금 간척 사업 등으로 인해, 환경은 파괴되었으며,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말앗다. 이 소설은 바로 인간이 생각하는 할매가 아닌, 자연이라는 거대한 가치 속에서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할매를 중심으로 두고 있었다. 짧은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삶에 비해서, 나무의 삶은 천년 그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그곳에서 삻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을 묵묵하게 지켜보며,자신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팽나무, 즉 할매나무는 우리가 지켜주어야 하는 무형의 가치였고,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가치관이 아닌, 자연과 환경이 주는 가치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생명에 대해서,인간 중신의 가치를 지구에 퍼트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위험함과 두려움을 상기시켜주고 있다.자연의 가치를 다시 돌려주고,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동학이 주는 메시지, 서학의 조선에 들어와서 박해 당했던 것들,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인간이 600년간 묵묵하게 한자리를 지켜온 팽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생명과 자연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