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ㅣ 시대철학 1
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 비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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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자코모 카사노바는 한국인에게 쾌락을 쫒는 바랑둥이로 알려져 있다. 그가 보여준 여성 편력은 그 당시 프랑스계의 사교 활동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베네치아 출신이면서, 라틴어를 사용하였고, 여성의 심리를 읽는데, 그 누구보다 탁월했다. 몰락한 귀족의 사생아였으며, 카발라에 능통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리고 교황과 식사한 적 있는 지식인이기도 하다.카사노바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서사를 완성할 줄 알았고,그것을 활용하여, 사람의 결핍을 읽을 수 있었다.



결핍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이다. 카사노바는 권력자에게느 비밀을 팔았으며, 부자에게는 신비를 팔았다. 21세기의 관점으로 보자면, 카사노바 마케팅이었고, 카사노바식 퍼스널 브랜딩이기도 했다. 자기의 위치와 가치를 상대방에게 인식하게 했으며,자신의 매력을 상대방에게 파는 방법을 알았다., 그것을 책에서는 '고프레임'의 기술이라 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프레임 기술을 사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다가가느 모습,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카사노바느 그렇지 않았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게 했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면서,철저한 계산에 따라서,움직였기 때문이다.



카사노바느 죽기 직전에, 회고록을 남겼다. 모국 언어인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하였고, 장장 30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회고록을 남겼다. 풍기문란죄로, 세상과 단절되었던 그가, 1년 동안 치밀하게 교도소 탈출을 준비하였고, 성공하였다. 18세기 유럽은 안전이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유명한 배우 어머니를 둔 카사노바는 내면의 결핍 안고 있었다. 유럽사회에서,배우는 낮은 지위였으며, ㅁ사노바의 태생적 조건은 그다지 퐁요롭지 않았다., 살롱에 들어가거나, 도박장에서 살아남거나, 귀족 부인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카사노바는 상황에 맞게,분위기에 맞게 나만의 페르소나르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자신의 다면적인 성향을 팔았으며, 스스로 자유를 선택하였다. 카사노바의 매력은 점점 더 사그라들었고, 후원자도 끊어지고 말았다. 말년에 초라했던 카사노바는 둑스 성에서, 회고록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사사람들마다 외적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둑스 성의 사서로 일했던 카사노바는, 고독의 시간을 견뎌왔고,자신의 서사의 부피를 기억 저장소로 완성하였다.그리고,그는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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