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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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확실한 곳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떨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13-)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22-)



외부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노랑 앵무새로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 당신은 눈을 감자마자 노랑 앵무새를 떠올릴 것이다. 그 생각은 차츰 강박적이 되어 밥을 먹을 대나 일을 할 때나., 심지어 꿈 속에도 노랑 앵무새가 나타날 것이다. 그 새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27-)



마음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해도 자기 자신은 듣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시키고, 어떤 단어는 기도처럼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질과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36-)



"상처가 되는 경험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즉 삶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 당신의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온 기회야,.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것과 비슷한 또 다른 경험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38-)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다.만약 우리가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길이 막하는 것은 내면애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니 가슴은 안다. (-55-)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그것이 내가 정한 이곳의 규칙입니다. 실제로 나는 2킬로미터 사방에 있는 양치기들에게 물과 음식이 필요한 길 잃은 사람이 나타나면 넥타이를 주라고 지시해 놓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넥타이를 받았다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내 천막 안으로 초대되어 물과 음식을 제공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62-)



또한 '순다르'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고 나자 사람들의 일상 대화에서 그 단어가 자주 귀에 들렸다. 없었던 단어가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내가 듣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많은 부분 '문맹'에 가까웠다. (-74-)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대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101-)



그러나 '시인'의 품사는 삶, 사랑, 여행처럼 명사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그 단어들은 현재진행형일 때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 있을 때 나는 시인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시인이 아니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독자이고, 버스를 타면 승객이며, 병원에 가면 환자이고, 식당과 카페에서는 손님이다. (-115-)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당신의 영혼을 기다려야만 하오,영혼은 아마도 당신이 몇 해전 갔던 어느 장소로 당신을 찾으러 오는 중일 것이오. 기다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오. 이것말고는 내가 처방해 줄 약은 없소." (-126-)



세월이 서로에 대한 앙금을 지운 후였다. 좌담회가 끝나고 그와 단둘이 마주앉은 자리에서 내가 문득 그에게 ,학생 시절에 매일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다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듯밖에도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학비가 없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대학신문사 편집장으로 일해야 했으며, 그래서 항상 단정한 복장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자취방을 얻을 수 없어 신문사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고 덧붙였다.그도 내가 그 시절 잘 곳이 없어서 벚꽃 휘날리는 봄날의 캠퍼스를 노숙자처럼 하고 다닌 것을 알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함께 웃었다. 그와 나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혼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식이 달랐을 뿐, 우리 둘 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몸짓을 다한 것이다. 그는 그대로 학생신문사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자고 나는 나대로 휴게실 커튼을 덮고 자면서, 우리의 지향점은 다르지 않았다. 삶에 대한 추구와 갈망이 내면에 있었다면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는 그의 방식대로. (-138-)



생각은 억압할수록 더 강해진다. 집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 중 어떤 이는 환영하고 어떤 이는 못 지나가게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행인들과 다투느라 이내 지쳐 버린다. 생각이 오고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지켜볼 때 비로소 명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승은 보여 준 것이다. (-147-)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쉽게 부서진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 개의 맛있는 사과가, 도 한 번의 동일한 기쁨이, 도 하루의 날이 어김없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마음의 기대에 불과하다. 어느 것이나 생애 단 한 번의 기회일 뿐, 다음 순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 역시 우리 각각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잇는 것처럼, (-167-)



'내가 가능한 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만약 내가 이 순간에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친절하기를. 만약 내가 친절할 수 없다면 판단하지 않기를. 만약 내가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를 끼치지 않기를. 그리고 만약 내가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해를 끼치기를.'(-173-)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의미할까?'안다' 처럼 정반대의 말과 같은 의미인 단어가 또 있을까?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향하는 방향만 볼 뿐, 그가 어떤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안는 일이다. (-209-)



신이 배치해 둔 표식들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면 길을 발견할 것인가. 우리가 찾는 것이 사실은 우리를 찾고 있다. 표식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길들을 지나쳐 왔다면 잠시 뒤돌아보라.당신이 여행한 어느 골목 어느 지점에선가 당신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기다리던 어떤 표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켰을지도 모를 우연히 남긴 책의 한 구절이, 삶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가. (-219-)



왜 붙잡으려고 하는가. 떠나는 것은 떠나게 하고 끝나는 것은 끝나게 하라.결국 너의 것이라면 언젠가는 네게로 돌아올 것이니. 고통은 너를 떠나는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네 마음에 있다. 놓아버려야 할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마음에. (-244-)



시인 류시화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은 잔잔한 파도 위에 내가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삶에 있어서, 수많은 오류와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시인 류시화는 1980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 때부터 전업 작가가 되었다. 번역과 관련한 일도 이어져 왔었으며, 자신의 길, 나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류시화는 1970년대 고학생이었다. 가난했고,대학에 가기 어려운 형편 속에서,노숙이 반복되었다,추위를 몸으로 견디고, 더위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어리석음 속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고자 한다.



책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내 인생을 이렇게 산문집으로 담담하게 쓸 수 있을까. 그의 책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본인의 깨달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으며,좋은 것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느끼고 경험했던 시간들 속에서, 어리석음과 미추함을 드러내고자 햇을 뿐이다. 특히 우리는 내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고, 해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의 실천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생의 여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누구나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상실과 이별을 경험한다.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 스스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내 앞에 놓여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내 앞에 놓여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말하고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사랑하는 것은 언젠가는 떠날 것이고, 나 자신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상실과 이별에 연연히지 않는 것,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삶이며, 나를 아끼고, 내 주변 사람을 위해서,내 가 할 일이다. 스스로 아끼며 살아가되 , 내 생각과 가치관,신념이 나의 선택과 결정에 저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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